<걸어서 삼국지 기행 31 후베이성편> 8-3. “지원군을 애타게 기다리며”- 징먼 망병석

2012-02-06 12:35
  • 글자크기 설정
관우가 지원군이 오는 지를 살펴보기 위해 올랐다는 망병석. 당시 관우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바위가 우뚝 솟으면서 관우의 발자국이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졌다는 전설이 내려져온다.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중국 후베이(湖北)성 징먼(荊門)시에 가면 중국 중원 역사의 시초부터 함께 해 온 고도(古道)가 하나 있다. 바로 징저우(荊州)와 샹양(襄陽)을 잇는 징샹(荊襄)고도다. 이 길은 중국 하·은·주 고대 왕조 때 부터 명·청조 때까지 역대 왕조의 전략적 요충로로 이용됐다고 전해진다.

고대시대부터 전략적 요충로로 이용됐다는 징샹고도.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 주민들이 자주 이용했으나 옆에 새로 고속도로가 개통된 지금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길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 역사의 고도 옆에는 관우의 고함소리에 놀란 바위가 땅에서 솟아 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망병석(望兵石)’이 자리잡고 있다.

번성 양양 공략 당시 여몽에게 형주성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형주성을 되찾아야겠다는 마음에 급히 이 고도를 따라 징먼에 도달했다.

당시 지원군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관우는 급한 마음에 바위 위로 올라서 지원군이 오는 지를 살피려 했다. 그러나 바위가 너무 낮아 보이지 앉자 관우는 발로 바위를 구르면서 “바위야. 어서 솟아라. 안 그러면 내 너를 밟아 부서 버릴 테다”고 크게 외쳤다. 이 소리에 놀란 바위가 갑자기 땅위로 솟구쳐 오르면서 관우 발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

망병석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발자국.


망병석이라고 불리는 이 바위 위에는 실제로 커다란 발자국 세 개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발자국이 어찌나 거대한 지 보통 사람의 발이 두세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다.

관우의 발자국이 어찌나 거대한지 보통 사람의 발이 2~3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다.


징먼시 여유국 천(陳) 과장은 “본래 발자국은 관평의 발자국까지 총 4개였으나 지금은 바위 한쪽을 백성들이 쪼개 가져가버려 세 개 밖에 남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 전체가 바위산이다 보니 당시 관우의 고함소리에 이곳에 있던 바위들이 모두 놀라 북쪽을 향해 솟았다고 한다. 저 멀리서 관우를 뒤쫓아 오던 여몽은 솟아오른 바위를 마치 산 속에 숨겨져 있던 복병으로 착각해 추격을 멈췄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곳 마을에는 ‘관우의 고함소리에 놀라 산속의 바위들이 하늘을 향해 솟았네, 마치 제갈량의 팔괘진을 보는 것 같으니 이에 놀란 여몽의 병사 수만명이 퇴각했네’라는 가삿말의 민요도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관우에 대한 무한한 숭배감에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전설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갈 법도 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