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칼럼] 김정은은 어떤 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가?

2017-09-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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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칼럼
 

                                              [초빙논설위원·전 주호주대사]


김정은은 어떤 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가?

인간은 생물학적인 욕구, 즉 ‘생존(제1 법칙)’, ‘번성(제2 법칙)’, ‘진화(제3 법칙)’의 3종 세트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인간의 악(惡)한 행동으로 간주되는 것은 물론 선(善)한 행동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바로 이 3종 세트의 작용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공동으로 지켜야 하는 규범을 만드는 데 동의한 것도 그것이 옳다는 가치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 규범들을 지키는 것이 3종 세트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이라는 안보상의 규범도 마찬가지다. 한·미 동맹으로 인하여 한국과 미국이 서로 3종 세트를 추구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만들어 졌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또는 미국이 한·미 동맹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계산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동맹 관계를 파기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의 근간이 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는 유효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한·미 상호방위 조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에 따라 주한 미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한국을 돕기 위해 자동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인계철선(trip wire)’이라는 환상이 빚어낸 법 형식주의의 오류에 불과하다.

반대로 ‘한·미 상호방위 조약’이 파기된다고 해서, 또는 주한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개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역시 법 형식주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미 간에 상호방위조약도, 그리고 주한미군의 존재도 없었지만 미국은 매우 신속하게 파병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또한 북한에 중국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 중국군이 북한 사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위험한 오류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는 중국군의 그림자도 없었지만 중국이 대규모 군대를 파병하면서 개입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이나 한국, 중국, 북한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법 형식주의가 아니라 각자에게 3종 세트를 추구함에 있어서 무엇이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대한 계산뿐이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 8월 23일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의 동의 없이도 필요하면 북한에 대하여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은 이를 너무나 잘 표현한 것이다.

미국의 독단적인 대 북한 군사행동은 한반도를 우리 영토로 정의한 우리 헌법과 모순되는 행동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사정일 뿐이다. 그리고 한·미 동맹 때문에 미국이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 북한에 대하여 독자적 군사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오류일 뿐이라는 것을 벨 사령관은 일깨워준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1973년에 제정된 ‘전쟁수행법(War Powers Act)'에 의하여 미 의회의 제약 없이 60일간 전쟁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실제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추가 30일) 전쟁을 수행한 적도 있다. 한반도에서 미국이 군사행동을 한다면 60일 내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게 되어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웠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중국몽’의 실현을 주장하고, 일본의 아베 총리가 개헌을 통한 ‘일본의 화려한 재등장’을 추진하는 것은 모두 3종 세트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중국이 ‘중국몽’을 추구하면서 아태지역은 미국 제일주의와 중국몽이 서로 부딪히고 있으며 아태지역의 지각이 변동하고 있다.

이 지각변동의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남북한 모두 3종 세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1 법칙인 ‘살아남기’ 위하여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선하게 보인다고 하여 미국이 한국을 선하게 대하지도 않고, 한국이 미국에 악하게 군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을 악하게 대하지도 않는다.

또한 북한이 중국을 악하게 대한다고 하여 중국이 북한을 악하게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미국을 악하게 대한다고 하여 미국이 북한을 악하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과거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가 그러하였다. 최근 미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하였다. 긍정적인 무엇(something positive)인가 나올 것이다”라고 한 것도 이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참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보호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미국이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주한미군이 존재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미국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참전할 것이다. 그 반대도 성립된다.

우리가 미국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국가인가? 그것은 미국이 아태지역에서 중국몽과 대립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미국의 이익을 한국이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그리고 북한이 미국에 대하여 도발하는 경우에 한국이 미국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또한 중국이 아태지역에서 미국과 대립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중국몽을 실현하는 데 북한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면, 중국은 북한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의 행동규범 원칙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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