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를 보면 중국이 보인다

2017-09-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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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이타이 효과’ ‘팡관푸’ ‘란런 경제’ '컨라오주'… 새로운 말에 투영된 '중국의 오늘'

中 공유자전거 업체 대박 빗댄 '쓰이타이 효과'… 중국판 88만원 세대 '충망주'

그 시대 사회상·신세대 모습 담긴 중국어… 중국의 현재를 아는데 효과적 수단

‘헬조선’, ‘인구론’, ‘국뽕’. 아재든 꼰대든 이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설령 들어보지 못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조선(朝鮮)의 합성어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지옥에 비유한 신조어로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구론’은 인문계 졸업생의 비애를 담은 것으로 ‘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의미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자국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그렇다면 ‘관태기’, ‘멍청비용’, ‘탕진잼’은?

점입가경이다. 부연하면 ‘관태기’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다.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낀다는 뜻으로 혼자 있기를 즐기는 요즘 젊은 층의 특징을 보여주는 말이다. ‘멍청비용’은 본인의 실수나 생각 부족으로 발생한 비용을 뜻하는 말이다. ‘탕진잼’은 소소하게 탕진(낭비)하는 재미라는 의미다.

이런 말들을 신조어(新造語)라고 부른다. 신조어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신조어를 보면 그 나라, 그 시대, 그 국민을 파악할 수 있다.

중국에도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된다. 신조어에 중국의 시대상과 사회상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쓰이타이 효과(四姨太效應)’라는 말이 있다. ‘넷째 첩 효과’라고 불린다. 톈쏭(田松) 북경사범대학교 교수가 만들어낸 말이다. 쓰이타이는 장예모(張藝謀)감독이 연출한 영화 《대홍등롱고고괘(大紅燈籠高高掛)》(‘큰 붉은 등을 높이 달고’ 라는 의미) 중에서 영화배우 공리(鞏俐)가 맡은 네 번째 첩 쏭롄(頌蓮)을 가리킨다.
 

'쓰이타이 효과' 신조어를 만들어낸 장예모 감독의 영화 <큰 붉은 등을 높이 달고>의 한 장면.  [사진=바이두]



영화에 나오는 4명의 첩은 영감의 관심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넷째 첩 쏭롄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난다. 영감의 아들이 쏭롄을 찾아가 어리석다고 쏴 붙인다.

이때 쓰이타이 쏭롄은 이렇게 반격한다. “내가 어리석다고요? 난 어리석지 않아요! 난 이미 계산을 끝냈다고요. 시작은 물론 거짓이겠죠.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영감이 내 처소에 자주 들리기만 한다면 오래지 않아 거짓은 진실이 되고 말 거예요.”

쓰이타이는 지혜롭다. 가짜 임신이지만 이로 인해 영감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면 임신할 기회는 그만큼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방점은 가짜가 진짜로 변할 수 있다는 데 찍힌다.

‘쓰이타이 효과’는 경제계에 널리 쓰인다. 실력이 부족한 기업이 각종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그로 인해 자본을 유치하고, 이후에 안정적으로 성장했다면 이게 바로 쓰이타이 효과라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분야가 ‘공유자전거’다. 모바이(摩拜)와 오포(ofo) 등 공유자전거 회사들이 지난해 하루아침에 대박이 났다. 매체들이 앞 다투어 조명하면서 공유경제의 대명사가 됐다. 그에 따라 투자자들이 몰리고 자본 유치에 성공했다. 회사 규모도 커졌다.

쓰이타이 효과 지지자들은 이를 두고 ‘가짜 공유경제’, ‘사상누각’이라고 부른다. 한낱 ‘대여 자전거’일 뿐이어서 결국은 몰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전거는 많은 장애물을 가지고 있다. 낮은 만족도와 높은 소유비용, 계속되는 유지비 발생, 시민들의 낮은 의식수준, 사업 전망 불투명, 자전거 자체의 한계(날씨), 지역적 제한, 대여 이외 다른 수익모델 발굴 애로 등이 그것이다. 지금 중국에는 ‘쓰이타이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팡관푸(放管服)’라는 신조어도 있다. ‘팡’은 중앙정부의 행정권 이양을, ‘관’은 정부기관의 신기술 및 새로운 시스템 활용과 혁신을 통한 행정능력 향상을, ‘푸’는 정부기능을 개편해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감소시키고 시장의 일은 시장이 결정하도록 유도해 시장의 활력과 창의력을 촉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팡관푸에는 행정관리권의 최소화를 통해 대민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선조후증(先照後證)이란 신조어도 있다. 영업 허가증을 먼저 발급해주고 사후에 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바꾼 것을 말한다. 다증합일(多證合壹)이라는 신조어는 각종 증명서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의미다. 이들 신조어에는 창업절차 간소화를 위해 불필요한 절차를 과감히 철폐하겠다는 혁신의 의지가 담겨 있다.

‘가오푸솨이(高富帥)’, ‘바이푸메이(白富美)’라는 신조어는 글자만 봐도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전자는 키 크고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엄친아, 훈남에 해당된다. 후자는 피부가 하얗고 돈 많고 예쁜 여자를 뜻한다. 엄친딸, 훈녀에 해당한다. 두 신조어 모두 내면이 아니라 화려한 겉모습을 중시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짜이난(宅男)’과 ‘짜이뉘(宅女)’라는 신조어는 집에만 있는 남자, 집에만 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집돌이와 집순이의 중국 버전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서 취미생활을 하고,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인간관계를 발전시키길 싫어한다는 의미의 일본말 오타쿠(otaku, 御宅)와 같은 맥락의 신조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이런 ‘인간관계 단절형’ 사람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밍밍빙(明明病)’이라는 말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병’이라는 뜻이다. 내일을 뜻하는 밍티엔(明天)에서 明자를 따와 병을 뜻하는 病자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란런(懒人) 경제’라는 신조어도 있다. 게으른 사람이라는 뜻의 ‘란런’에 경제를 합성한 단어다. 란런 경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생활이 편리해진데다 바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도 식사, 쇼핑, 가사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란런 경제의 발달로 즉석식품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대형 식품회사들도 대거 진출했다. 각종 기발한 즉석 식품이 등장하고 있다. ‘즉석 훠궈’도 있다. 컵라면처럼 뜨거운 물만 부으면 뜨끈뜨끈한 훠궈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된다. 즉석 훠궈는 기차, 기숙사, 관광지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가격대는 35위안 정도로 우리 돈으로 6000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훠궈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란런 경제'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즉석 훠궈'.  [사진=바이두]



즉석 식품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라면 시장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이에 중국 대형 라면 제조회사인 퉁이(统一)가 라면사업을 축소하고 즉석 식품 사업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란런 경제가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독신 경제’는 독신 여성이 많아지면서 생긴 신조어다. 현재 중국 인구 약 14억 명의 7분의1인 2억 명 가량이 독신자다. 남녀 성비를 1:1로 봤을 때 1억 명 정도가 여성인 셈이다.

혼자 사는 여성들은 고가 의류나 화장품 등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파티를 즐기는 등 사교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유통업계가 매년 11월 11일 열리는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에서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독신 여성의 힘이 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의 경제 환경 및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라 탄생한 신조어들도 있다. 이 가운데 ‘~족(族)’과 같은 신조어는 바뀐 중국인들의 삶과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웨광주(月光族)’는 월급(혹은 돈)을 저축하기보다는 써버리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웨(月)는 하늘의 달이 아닌 월급을 나타내는 웨신(月薪)의 月이며, 광(光)은 빛이 아닌 모두 써버리다는 뜻의 화광(花光)의 光이다. 한 달 월급을 모두 써 버린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소비행태를 압축한 표현이다. 비난의 의미도 담겨 있다. 사교육비 지출 증가로 인해 주부들이 스스로를 ‘月光族’라고 부르기도 한다.

‘커우커우주(摳摳族)’는 月光族의 반대말이다. 절약하기 위해 쿠폰을 모으는 소비자를 뜻한다. 중국어로 쿠폰을 뜻하는 단어가 ‘커우치안(摳券)’인데 쿠폰을 알뜰살뜰 모은다는 의미의 ’摳摳族‘는 이 단어에서 시작된 것이다.

‘디터우주(低頭族)’라는 신조어는 스마트폰 세대와 관련된 표현이다. ‘디터우(低頭)’는 ‘고개를 숙이다’라는 뜻이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지하철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집안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대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중국도 스마트폰을 보느라 주위를 살피지 못해 생겨나는 사고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컨라오주(啃老族)’는 독립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떨어지지 않고 생계를 의탁하는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이들도 있다. 컨라오주가 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부른다.

‘허츠주(合吃族)’는 인터넷 등을 통해 함께 식사할 사람을 찾은 후 더치페이 방식으로 각종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비싼 요리를 먹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계산할 때 서로 돈을 나누어 내기도 한다.

‘주이싱주(追星族)’는 열성팬을 의미한다. 직역하면 ‘별을 좇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팬덤처럼 연예인의 공연이나, 팬미팅, 팬싸인회에 참여하며 열정적으로 연예인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충망주(窮忙族)’라는 신조어는 중국판 88만원 세대를 뜻한다. 대학 졸업 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낮은 평균 임금을 받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충망(窮忙)에는 먹고살기 바쁘다, 허둥지둥 바빠하다의 뜻이 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다. 이 신조어에는 바쁘게 일은 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담겨 있다.

신조어는 늘 생겨나고 소멸된다. 사회도 그만큼 변한다. ‘그 사람을 보려면 주변 사람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 나라, 그 시대를 보려면 신조어를 보면 된다. 중국 신조어에는 중국 경제의 발전과 정부의 정책방향, 급변하는 사회상, 젊은이들의 초상이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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