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기피시설 논란' 서울 시내 특수학교 3곳 가보니…우려했던 집값 하락도 통학차량으로 인한 교통체증도 없었다

2017-09-0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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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편의 시설로 환영받아…교직원들 유입 지역경제 되레 도움

주민들 인식 개선·반길만한 기반시설 마련 계속 설득작업 필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밀알학교 내부. 카페는 동네주민들의 휴식장소로도 활용된다.[김현이 기자]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지으려는 시 교육청의 계획이 난관에 처했다. 지역 주민들이 "강서구에는 이미 특수학교 한 곳이 있고, 공진초 자리에는 국립한방의료원이 설립돼야 한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급기야 교육청이 지난 6일 주민들과 특수학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눈물로 호소하는 장애학생 학부모들을 향해 일부 주민들은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다. 과연 특수학교는 주변 이웃들이 혐오하는 기피시설일까? ‘아주경제’는 7일 서울 시내 특수학교 3곳을 찾아가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순간에 나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2000년 초,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특수학교인 경운학교가 지어질 당시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건 문구다. 경운학교도 처음에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주민들은 집값 하락과 통학차량으로 인한 주변 교통체증 등을 우려했다.

7일 오전 만난, 경운동에서 23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씨(68)는 당시 경운학교 설립에 찬성하는 주민이었다. 그는 "특수학교가 세워지는 것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사람들을 모아서 피켓을 들고 시위까지 준비했었다"고 회상했다. 경운학교는 2002년 주민 찬성 비율 60%를 넘겨 개교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한 설득 작업의 결과였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경운학교는 2017년 현재 140여명의 지적장애 학생들이 꿈을 키우고 있다. 개교 당시 14학급에서 현재는 24학급으로 규모도 커졌다. 우려하던 교통체증이나 집값하락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운학교에는 관할구역인 종로구‧중구‧용산구가 아닌 지역에서 오는 학생도 2명 있다. 서울 시내에 특수학교 수요가 늘어나면서 학교들이 학생 수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장애아동을 둔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서울시 교육청은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려 하고 있다. 

김씨는 "경운학교 건립과 함께 구도심이던 경운동의 상‧하수관로를 새로 정비하고, 골목길을 넓히는 등의 기반시설 개선이 이뤄졌다"며 "강서구에서도 주민들이 반길 만한 기반시설을 마련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주민 설득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혐오·기피 시설에서 주민 복지·편의 시설로

주민들에게 환영받는 특수학교들도 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밀알학교는 대표적인 '지역사회 친화형 학교'다.

밀알학교도 1997년 설립 전까지는 주민들의 거센 반대를 겪었다. 공사를 방해한 주민들과 법정 다툼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학교가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복합문화예술공간을 꾸며 개방한 덕분이다.

이날 오전 10시쯤 찾아간 밀알학교는 지하철역 인근 대단지 아파트들과 담을 마주하고 있었다. 밀알학교에 붙어 있는 '밀알미술관'은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갤러리에서는 전시가 열리고, 미술관 안 빵집과 카페에서는 지역 주민과 교회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눴다.

학교 안팎에서 치열했던 혐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역 주민인 한 30대 여성은 "학교 1층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갤러리 구경도 하곤 한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전혀 신경에 거슬리는 시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밀알학교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이 봉사활동도 많이 오고, 길에서 마주치는 학교 학생들을 격려하기도 해준다"고 말했다. 이 학교가 들어선 이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특수학교 인접 아파트 매매가 더 높다"

2000년에 개교한 서울 마포구 한국우진학교도 건립 당시에는 일부 주민들이 공사를 방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지역에서 우진학교와 인접한 아파트의 매매가가 더 높다"고 인근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안모씨는 귀띔했다.

실제 우진학교는 마포구 중동 일대에서 주민들이 좋아하는 시설이다. 개교와 함께 교사와 학생, 직원들까지 500여명이 이 지역으로 유입돼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교내 수영센터를 주민들에게 개방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우진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주부 유모씨(47)는 "우진학교가 있는 것을 알고도 5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왔다"며 "반대하는 주민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사는 데는 전혀 상관 없다"고 말했다.

12년째 경기도 고양시에서 우진학교까지 18세 딸을 통학시키는 김모씨(68)는 "자신들은 조금이라도 가까운 학교에 자식을 배정받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특수학교가 있는데 또 들어오냐며 반대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장애인은 당신도, 나도 될 수 있다. 오히려 때묻지 않은 천사 같은 아이들을 '기피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전국에는 총 173곳의 특수학교가 있다. 교육청에 따르면 거의 모든 특수학교들이 설립 과정에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다.

주민과의 분쟁을 거듭 겪으면서 교육부는 특수학교와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학교 내 도서관 등 문화시설을 지어 개방하거나, 장애 학생들이 '운동화 빨래방' 같은 사업장을 운영하는 등 문을 활짝 열어놓은 특수학교가 많다.

특수학교 설립 갈등을 방지하려면 투명하고 계획적인 행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현기 단국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도시개발계획 단계에서 특수학교 용지를 미리 공고하면 주민들의 반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1년 단위 예산이 주어지고, 정권도 5년 단위로 교체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한계도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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