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취준생 눈물 닦아주는 적폐청산...공수처 첫 수사, 강원랜드 해야

2017-09-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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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11일 강원도 태백시 통보광업소 막장 붕괴사고로 광원(광부) 15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스물여섯 꿈 많은 청년 고(故) 김동석씨는 그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김씨는 1991년 군 제대 후 곧바로 막장 일을 시작했다. 25년 동안 광부로 일한 아버지가 규폐증(폐에 규산이 쌓여 생기는 만성질환)에 걸려 일을 못하게 됐기 때문. 집안의 장남인 김씨는 중학교 졸업 후 시내 이발소에 취직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 동석씨의 어머니 손모씨는 평생 광부로 고생하다 저세상으로 떠난 남편 생각에 아들을 뜯어말렸다. 하지만 동석씨는 "몇 년 더 고생해 엄마를 편히 모시겠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막장 붕괴 사고 이튿날 아들의 주검조차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손씨는 아들뻘 기자의 손을 잡고 오열했다. "그렇게 말렸는데··· 이 놈아···"

강원랜드의 인사청탁 비리 뉴스를 접했을 때 태백의 막장 붕괴사고 현장이 떠올라 괴로웠다. 강원랜드는 강원도 태백·정선 등 폐탄광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손씨와 같은 참척(慘慽·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음)의 슬픔에 빠진 어머니도 포함된다. 탄광지역의 고달픈 삶을 살아온 이들은 강원도 태백·정선지역의 잇단 폐광으로 ‘인생 막장’에 몰렸다. 이들 한 명 한 명의 삶이 곧 지역경제의 피폐함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온 ‘특단의 대책’이 바로 강원랜드였다. 한국인들이 한국 땅에서 합법적으로 도박을 할수 있는 카지노를 단 한 곳, 이 지역에 세운 것이다.
그렇다고 강원랜드가 이 지역경제만을 위해 탄생한 기업은 아니다. 국민기업이기도 하다. 1999년 공모주 청약을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원하는 사람들은 조금씩이라도 주식을 살 수 있게 했다. 큰 인기를 끌어 청약경쟁률이 12.4대1에 달했다. 폐광촌 주민들은 ‘강원랜드 주식 1주 갖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사북청년회의소는 “주민 주식갖기 운동은 주식투자가 아닌 주민권리찾기운동”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강원랜드는 국민기업, 지역주민의 권리를 찾아준 기업이 아닌 정권의 기업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최근 드러난 자체 감사결과는 ‘권력의 전리품’, 그 민낯을 보여준다. 강원랜드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일반사무직, 카지노·호텔 부문 등 직원 518명을 공모를 통해 뽑았다. 공모, 즉 공개모집이란 말이다. 서류전형-직무평가-면접 순의 절차였다. 그러나 공모가 아니었다.  2015년 내부감사 결과, 518명 중 493명(95%)이 인사청탁을 받고 ‘별도의 관리’를 받아 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반사무직 채용은 누구 배경이 더 센지를 겨루는, 한마디로 ‘빽 싸움’ 이었다. 당초 강원랜드는 일반사무직은 14명만 뽑을 계획이었다. 카지노·호텔 부문 인력 수요가 훨씬 많았지만 서류전형 때 지원부문 구분을 없앴다. 청탁을 받은 일반사무직 지원자들을 더 뽑으려는 '꼼수'였다. 서류전형 이후 부문별 면접에서 일반사무직 응시자 151명이 면접을 봤고, 이 중 61명이 최종합격했다. 14명을 뽑으려다가 거절할 수 없는 ‘청탁 민원’으로 47명을 추가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강원랜드 감사팀은 이런 ‘복마전 채용비리’를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 2016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그러나 1년2개월 만인 올해 4월 최흥집 전 사장과 권모 인사팀장 단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청탁을 받은 이들 뿐 아니라 청탁을 한 자들도 수사해 처벌했을 것이다.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는 반드시 재수사해야 한다. 범위를 더 확대해 범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를 파헤쳐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안 된다. 애초에 제대로 수사 안 한(혹은 못한) 이유에 '검사 영감님'들의 2차 청탁이 있지 않았을까. 국회의 국정감사 혹은 특별검사 도입은? 강원랜드에 청탁을 한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동의할 이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굳게 약속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첫 수사 대상은 강원랜드다.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아들 잃은 어미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추신> 손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으나 구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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