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53] '차별 없는 종교'의 성과는? ①

2017-09-22 10:01
  • 글자크기 설정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끊이지 않는 종교분쟁

[사진 = 회교사원의 푸른 돔]

종교적 갈등이 불러온 숱한 분쟁은 수 천년동안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여러 차례 돌려놓으면서 오늘날까지도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십자군전쟁에서 첨예화되기 시작한 카톨릭과 이슬람의 극한 대립이 대표적인 사례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맞부딪친 유혈분쟁은 끝없이 이어져 왔다.

칭기스칸과 그의 代를 이은 후손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그 전쟁이 종교를 앞세운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어떤 나라와의 전쟁도 종교전쟁으로 확산된 경우가 없었다.
그 것은 칭기스칸과 그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른 후손들의 열린 마음이 거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종교적 갈등에서 비롯된 중동 분쟁의 뿌리를 보면 칭기스칸의 대(對)종교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중동사태
중동과 체첸, 보스니아, 캐시미르 ,아프간, 필리핀, 동티모르 등 오늘날 대부분의 분쟁지역이 종교적 갈등을 밑바닥에 깐 채 양보 없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우선 하루라도 평온하게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는 중동지역의 분쟁을 보면 도무지 해결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 예배중인 젊은 무슬림]


휴전과 평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분쟁 당사자들과 이른바 강대국들이 이 문제에 매달리고 있지만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해결책은 도저히 마련될 것 같지 않다. 팔레스타인 측의 자살 폭탄테러와 이스라엘 측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 등으로 고조되고 있는 위기상황은 과거 수십 년 동안의 사례로 미루어보면 타협을 통해 일시 완화될 수는 있겠지만 그 것도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위기상황의 해소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은 단지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아랍권과 미국 그리고 서유럽을 포함해 다양한 전선을 만들어 내고 있는 국제적인 난제다.

▶ 열강이 뿌린 분쟁의 씨앗

[사진 = 사마르칸드 화교 사원]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은 종교적인 문제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그 보다는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오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대상으로 서구의 열강들이 분쟁의 불씨를 뿌려 놓은 것이 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유대민족은 무려 2천 년 간 주로 유럽지역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유다와 함께 예수를 팔아먹은 민족이라는 오명아래 갖은 박해를 당해왔다.

그들은 1차 대전 당시 독일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영국을 도와주면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유대 민족 국가:Jewish National Home) 건설을 도와주겠다는 비밀 약속을 영국으로부터 받아 내게 된다. 이른바 1917년의 발포 선언(Balfour Declaration)이다. 이에 앞서 영국은 수에즈운하를 장악하고 있는 오스만 터키와 전쟁을 벌이면서 아랍인들을 끌어들여 영국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에 아랍국가의 독립을 약속했다. 말하자면 이중약속을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중에 아랍지역 영토분할 비밀협정을 맺고 팔레스타인을 영국이 차지하기로 했다. 이러한 비도덕적인 영토분할 구상이 두 민족을 화해할 수 없는 원수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민족분쟁이 종교분쟁으로 비화

[사진 = 회교사원의 복도]

2차 대전 후 유대인들이 대거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몰려들고 1948년 미국의 지원으로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두 민족 사이에 끝없는 유혈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슬람 세계가 팔레스타인 입장을 옹호하고 나서면서 중동전쟁의 불길이 당겨졌다.

단순히 두 민족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공격도, 수니파 이슬람 과격 단체 IS(이슬람국가)가 세계 곳곳에서 벌이고 있는 테러 행위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동 분쟁에서 빚어진 미국과 아랍권의 대치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다.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고 지원하는 미국과 서유럽 일부 국가에 대한 증오가 이슬람 극단 원리주의자들에게서 테러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 종교적 신념의 지하드 막기 어려워

[사진 = 예배 준비 중인 무슬림]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전체 이슬람인의 5%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지하드 즉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해 목숨까지 버려가며 극단적인 방법으로 아랍권 수호에 앞장서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자살 폭탄테러도 지하드라는 종교적인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알라의 적에 대항해 자신과 재산을 바쳐 이슬람이 승리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이슬람에서 말하는 지하드이다. 이들은 순교자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지하드 중 전사한 사람은 천국이 보장된다는 코란의 가르침을 받들고 있다.
 

[사진 = 몽골 여성의 오보 참배]

그래서 이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살아 있는 한 이들의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있다면 불신과 증오를 가져온 근본적인 상황을 제거하는 일인데 현실적으로 그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원칙으로 했던 이슬람교

[사진 = 무슬림 예배]

이슬람 세계에서는 지하드 즉 성전(聖戰)이 공격적인 개념이 아니라 방어적인 개념이라고 얘기한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교는 평화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슬람이라는 말속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종교는 배타적이지 않아서 非이슬람교도들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믿을 것을 강요하지 않을뿐더러 타종교도 인정하며 관용을 베푸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한다. 다만 이슬람교를 부정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는 알라의 적에 대해서는 그러한 관용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것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지하드라는 설명이다.

▶ 십자군 전쟁과 몽골정복전쟁의 차이

[사진 = 간단사의 어린이와 비둘기]

이슬람 세계는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십자군 원정 때는 유럽의 기독교권에 대해 지하드를 선포하고 강력하게 맞서 싸웠지만 13세기 몽골 푸른 군대의 폭풍과 같은 공격에 대해서는 성전을 앞세우지 않았다. 두 개의 전쟁을 비교해보면 그 것은 이슬람세계를 상대했던 칭기스칸의 몽골과 유럽권의 다른 인식과 자세가 그러한 차이를 나타낸 가장 큰 요인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