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아이캔스피크' 김현석 감독, 강조와 강요 없이도 깊은 여운

2017-09-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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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시나브로 스며드는 마법. 웃고 즐기는 사이 가슴 한켠에 남은 메시지는 어떤 강조와 강요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민원 건수 8000여 건에 달하는 구청의 블랙리스트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 분)과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꼭 할 말이 있고, 들어야 할 말이 있는' 옥분은 원어민 급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에게 영어 수업을 부탁하고 두 사람은 영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게 되며 '꼭 영어를 배워야만 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영화는 코미디의 외피를 입었지만, 그 속에는 묵직하고 또렷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영화 ‘YMCA 야구단’을 비롯해 ‘스카우트’, ‘시라노; 연애조작단’, ‘쎄시봉’에 이르기까지 따듯한 온도의 감성과 유머를 선보인 김현석(45)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해 가장 자신다운 이야기를 완성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김현석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 공개 후 반응이 정말 좋았다
- 반응이 좋으니 기분이 좋다. 사실 너무 정신없이 찍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제안을 받고 결정을 한 뒤 8개월 만에 완성했다. 딱 8개월하고도 이틀 걸렸다. 그러다 보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내세운 것 같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얻고 있어서 얼떨떨하다.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 당선작이다. 제작사에서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줬나?
- 아무 정보도 없이 정말 툭 던져줬다. 작년 중국영화를 준비하다가 사드 때문에 (촬영이) 중단 됐었는데 그때 공동제작인 명필름에서 제안이 왔다. 다른 제작사면 ‘준비하는 것 있다’며 거절할 심산이었는데 명필름은 ‘거절하더라도 읽어나 보자’고 생각했다. 읽다 보니 ‘고만고만한 코미디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절반이 지나 양상이 확 달라졌다. 미국 청문회까지 훅 읽고 하겠다고 했다. 또 중국영화도 연말에 정리하게 돼서 딱 맞아 떨어졌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 큰 틀은 바뀌지 않았는데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나 코미디는 제 연출 취향과 안 맞았다. 조금씩 각색했다.

‘아이 캔 스피크’의 첫인상은?
- 옥분 역은 나문희 선생님이다! 하하하.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았다. 그리고 민재는 원리원칙주의자인데 원래 시나리오는 코미디가 캐릭터 자체로 웃기는 구조였다. 저랑도 안 맞을뿐더러 제훈 씨와도 어울리지 않아서 코미디를 다시 설계했다. 톤을 다운시키기도 했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김현석 감독만의 코미디 체계가 있다. 박자감이 중요했을 텐데, 그 코미디의 리듬을 녹이는 과정은?
- 영화 소재가 후반부로 갈수록 무겁고 민감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마냥 웃길 수 없었다. 거기다 저는 뉘앙스로 웃기거나 박자로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해서 코미디를 수정해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재가 넘어가고 또 위화감이 없어지더라. 톤이 잘 맞아떨어졌다.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전체 균형을 유지하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니까. 그런데 다행히 초반에 해결이 됐다. 저는 배우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하게 하고 또 그걸 맞춰주는 게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나문희 선생님의 장점이 명확하고 또 제훈 씨는 개인기보다는 정석적인 연기를 하는 편이라서 그 장점들을 작품에 녹이는 것이 중요했다. 또 사실은 제훈 씨가 진지충(필요 이상으로 진지한 사람들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인데 그 덕에 자연스럽게 작품이 톤다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는데
- 우리가 숨긴다고 숨겨질 부분이 아니었다. 반전을 두고 ‘모르고 봤으면 더 좋았겠다’는 작품들이 있지만, 이 영화는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알고 본다면 옥분의 섬세한 표정들이 전부 다르게 느껴질 거다.

알고 봤는데도 중간에 잊게 되더라. 작품의 흐름에 따르다 보니 알면서도 놀라게 된다
- 내러티브적으로 뒤통수를 치는 건 얕은수다. 우리 영화 자체가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보니 (위안부 피해자 소재라는 것을) 까먹을 때가 있다. 사실 사람들이 이런 정서나 위안부의 역사를 모르는 건 아니지 않나. 각자 살다가 문득 ‘아, 맞다’하고 우리 곁에 계신 분들을 떠올리게 되고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지 않나. 그게 우리 영화의 태도나 방식이기도 하다.

기존 위안부 소재 영화들이 재현에 가까웠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피해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온도감을 가지고 연출하고자 했다. 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저는 ‘귀향’ 감독님과 다르다. 조정래 감독님은 15년간 나눔의 집을 봉사하시면서 사명감으로 작품을 만드셨고 저는 작품을 만들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접하게 됐다.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참석했었는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가식 같더라. 그래서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있다가 갔었다. 영화는 나 같은 사람들의 시선을 담는 작품인 셈이다. 잘 몰랐고, 딱 그 정도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의 눈으로 실상을 보게 되는 것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옥분 역의 나문희(왼쪽)와 민재 역의 이제훈[사진=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배우들의 열연은 ‘아이 캔 스피크’의 최대 무기인 것 같다. 특히 나문희 선생님의 롱테이크 신은 대단했다
- 산소 신은 진짜 대단했다. 나문희 선생님과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영광이었다. 산소 신의 경우에는 정말 카메라를 돌리고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배우들을 카메라에 담다 보면 그런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호흡이 너무 잘 맞으니까 원신 원 커트로 담고 싶다는 마음? 하하하.

이제훈이 든든하게 받쳐준다는 느낌이었다
- 그렇다. 민재가 잘 해줘야 했다. 연기 내공이 없으면 안 될 일이었다. 예를 들어서 ‘밀양’의 송강호 같은 연기인 거다. 오히려 그런 연기가 더 힘들기도 하고. 그 어려운 걸 이제훈이 해낸 거다. 하하하. 사실 제훈 씨가 캐스팅되었다고 했을 때 ‘코미디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같이 작품을 해보니 딱 우리 영화에 맞는 톤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를 누군가에게 딱 10분만 보여줘야 한다면? 어떤 장면을 보여주겠나?
- 옥분과 민재가 영어를 배우는 장면이 몽타주로 흘러가는데 이게 얼추 10분 정도가 된다.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 좋다. 영화를 보고 ‘두 배우의 앙상블이 좋았다’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 연기 스타일도 다르고 세대도 다른데 두 사람의 모습이 지루하지가 않다. 느슨하면서도 두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이 잘 담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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