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AI 왓슨이 던지는 메시지, 질병은 빅데이터

2017-09-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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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사진=김홍열 초빙 논설위원 · 정보사회학 박사]


AI 왓슨이 던지는 메시지, 질병은 빅데이터

천형(天刑)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늘이 내리는 형벌이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 쓰이기도 한다. 천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어간 문둥병 시인 한하운은 자신의 시 ‘벌(罪)’에서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에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죄 지은 적도 없는데 하늘이 벌을 내렸고 평생 고통스럽게 살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문둥병뿐만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지적장애도 있고 루게릭병처럼 육체를 서서히 망가뜨리는 병도 있고 알츠하이머같이 서서히 정신을 쇠퇴시키는 병도 있다. 수십년 전과 비교하면 의학이 많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천형으로 남아 있는 질병들이 많다.

그중 가장 공포스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암이라는 병이다. 조기 발견 시 완치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운이 좋은 경우이고 늦게 발견하면 평생 암과 싸워야 한다. 치료 기간도 길고 치료 기간 중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쉽지 않다. 재발되면 완치가 더 어려워진다.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암환자는 항상 죽음의 공포와 대면한다. 경제적 부담, 정신적 불안, 가족 공동체의 희생 등이 늘 따라다닌다. 암은 선천적 요인에 의해 발병하기도 하고 후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언제 걸릴지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늘 조심해야 하고 조기 발견을 위해 매년 정기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병에 걸리면 의사가 신처럼 보인다. 지금은 병원이 도처에 있어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의사는 사제와 같은 반열에 있다. 영혼이 불안하면 사제가 필요하고 몸이 아프면 의사한테 간다. 불안하고 아픈 것은 개인이지만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이 개인에게 없다. 호모 사피엔스 이후 의사는 늘 사회의 주요 리더였다. 의사는 종교적·심리적으로, 때로는 기술적·의학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치유해왔고 또는 치유해왔다고 믿어졌다. 국가와 사회는 이 의사들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 오랜 기간의 의대 교과과정과 인턴, 레지턴트의 수련의 과정을 만들었다. 의사들은 사회적 존경과 높은 소득을 얻게 되었고, 사람들은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이런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사가 아닌 인공지능이 의사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기 시작했다. IBM이 만든 인공지능 왓슨이 2016년 9월 가천 길병원에 도입된 이후 부산대병원이 국내 두 번째로 왓슨을 도입했고 건양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조선대병원도 왓슨을 도입했다. 처음 길병원이 왓슨을 도입할 당시의 사회적 우려가 어느 정도 희석됐다. 길병원 자체 분석 결과 암환자에 대한 전문의의 진료 결과와 왓슨의 진료 결과 일치율은 70~80% 정도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2006년에서 2016년 사이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은 370명의 환자 데이터를 기초로 실제 치료요법과 왓슨이 제시한 치료 요법의 80.8%가 일치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왓슨은 데이터 분석 시스템이다. 수사적으로 표현하자면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다.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처음 알고리즘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생긴다. 우리는 이미 알파고에서 경험했다.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바둑 9단의 실력자들도 더 이상 알파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바둑은 신의 놀음이 아니라 데이터의 집합이고, 빅데이터 분석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떠났다. 바둑에서 인간을 압도한 인공지능이 다음 도전자로 선택한 것이 의료분야다. 바둑이나 의료분야나 인공지능이 보기에는 동일하다. 기본적으로 둘 다 데이터들이다.

질병이 천형이 아닌 다음에야 결국 데이터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유전적·신체적·환경적·사회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암이 된다. 바둑과 달리 모두 아날로그 데이터라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쉽게 이해되는 분야가 없다. 생물학적으로는 동일 종에 속하지만 개인에 따라 원인도 다르고 치료과정도 다르다. 의사 한 사람이 모든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제 수술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힘들게 얻은 정보의 일부는 사회적 자산으로 환원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개인적 경험으로 저장되어 소수의 후학들에게만 전달된다. 명의가 되어 명예를 얻기도 하지만 아직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의학은 모든 병은 궁극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원인과 치료법에 관한 데이터들이 계속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왓슨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암은 천형이 아니고 분석 가능한 데이터의 집합이다. 데이터 분석 전문가 왓슨이 할 역할이 분명히 있고 잘 수행할 수 있다. 데이터 처리 속도나 데이터 분석 범위, 사용 가능한 언어, 최신 의학 저널, 의약품 소식 등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에서 왓슨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다. 길병원에 도입된 왓슨은 사람으로 치면 현재는 능력이 뛰어난 전공의 수준이라고 한다. 수년 안에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왓슨이 전문의가 된다 하더라도 의사는 여전히 필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왓슨이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왓슨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명의가 등장하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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