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⑯] 한·중, 언제나 ‘항일’엔 한 목소리…양국 공동제작 위안부 다큐 ‘22’ 中서 돌풍

2017-09-28 15:52
  • 글자크기 설정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일제 강점기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고난과 목숨 건 탈출기를 그린 영화 ‘군함도’는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라는 인기배우의 출연과 함께 식민지 시대와 강제징용의 암울한 역사, 군함도로 불리던 하시마 탄광이 2015년 세계 유산 등재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다.

개봉 이후에도 영화 소재나 역사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배급 등이 논란되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은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 사건을 알리고 담론화하는 것 또한 영화인의 의무라고 이야기한다. 류 감독은 “민족주의, 애국주의 코드를 자극하거나 선악 구도를 부각시키는 항일영화라기보다는 전쟁이 불러온 인간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핍박받는 조선인을 보며 느끼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욱일기를 찢는 장면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부정할 수는 없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냉담한 분위기 속에도 중국 관영매체 CCTV는 영화 줄거리, 역사적 배경, 관객 반응 등 10여분에 걸쳐 ‘군함도’를 심도 있게 소개하고 ‘항일 대작’이라고 극찬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일본은 군함도에서 일어난 강제징용과 같은 사건들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며 일본을 비난했다.

한국과 중국은 오래 전부터 ‘항일사상’ 아래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제 식민 통치 아래 억눌렸던 한국 민중과 중·일전쟁을 통해 중국인이 겪은 일본의 잔인함은 양국 국민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매듭짓지 못한 과거 사건들로 ‘항일’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양국의 문화적 토양인 유교사상도 ‘충(忠) 사상’을 강조했기에 한국인과 중국인의 내면에는 애국주의, 국가주의 가치관이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은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한 이념이나 체제를 통해 국가주의를 굳건히 한다. 한 중국 매체의 대학생 가치관 조사에서도 중국 대학생들은 ‘부모’와 ‘조국’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최근 중국에서도 소위 ‘국뽕’ 영화라 불리는 ‘잔랑(戰狼)2’가 개봉 12일 만에 ‘미인어(美人魚)를 제치고 역대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으며 흥행수입 9000억원, 관객 수 1억5000만명 달성 등 중국 영화 산업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잔랑2‘의 성공은 비헐리우드 영화 최초 세계 박스오피스 100위 내 진입이라는 쾌거도 이뤄냈다.

박스오피스 내 상위 영화들이 코믹한 스토리의 오락적 영화가 주를 이루던 중국 영화 시장에서 부대에서 축출당한 특수부대 대원이 아프리카 반군에게 포로로 잡힌 난민과 중국인들을 구출해 탈출한다는 스토리의 전쟁영화 ‘잔랑2’는 중국인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애국’ 문화유전자를 자극한다.

“당신이 해외 어디에서 어떤 위험에 처하든 당신의 뒤에는 강대한 조국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영화 엔딩자막은 중국인들 내면의 국가주의를 한껏 고취시킨다.

‘잔랑2’의 흥행보다 더 눈여겨볼 것은 위안부 다큐멘터리 영화 ‘22’의 돌풍이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제작한 ‘22’는 중국 내 위안부 할머니의 인생을 다룬 영화로, 세계 위안부의 날 개봉해 화제가 됐다. 기록면에서도 ‘전랑2’를 넘어서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2월 한국에서 개봉한 ‘귀향’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공이다.

한국은 1928년 ‘애국혼’을 시작으로 1945년 ‘자유부인’ 등의 항일 영화가 제작됐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의 통제와 검열, 전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항일을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2000년대 들어서야 ‘YMCA 야구단’(2002),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등 일제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왔다. 최근에는 ‘덕혜옹주’, ‘암살’, ‘동주’, ‘밀정’, ‘박열’ 등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물들이 대거 제작되고 있다.

항일이라는 영화 소재는 쉽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스토리와 높은 제작비가 결합한 대작들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중국에서 항일영화는 그 뿌리가 깊다. 일제 강점기 한국 영화인들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영화인들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40년대 한국에 수입된 중국의 항일영화는 식민지 시대 서러운 한국대중의 마음을 위로했다. 이후에도 중국은 지속적으로 항일과 관련한 영화를 제작해왔다.

영화는 문화가치관을 담고 있다. 특정 사건을 담론화하거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영화의 속성으로 권력자들은 영화를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일본 또한 ‘군함도’가 개봉하기 이전부터 영화가 “날조됐다”, “거짓이다”라고 비판하며 후폭풍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군함도가 이슈화되면서 또 다른 조선인 강제노동 동원지인 사도(佐渡)광산을 세계유산에 올리려던 일본 문화심의회의 계획은 보류됐다.

다큐멘터리 '22' 포스터 [사진 출처=다큐멘터리 '22' 공식 홈페이지]

영화는 현실의 재현이면서도 현실은 아니다. 영화가 재현한 역사적 사실이 역사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일본은 군함도의 세세한 스토리가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따지기보다는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과 중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 사실을 담론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흥행과 오락을 목적으로 ‘항일’을 다루면서 애국주의와 국가주의를 자극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백해린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 박사)]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