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의 차이나 무비⑤] ‘신녀’가 연 여성영화 시대…지금 봐도 ‘최고 중국영화’

2017-10-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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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최고 스타 롼링위 주연

낮엔 어머니·밤엔 매춘부 캐릭터

당시 상하이 모순된 사회상 투영

영화 '신녀'의 포스터[사진 출처=바이두]

영화 '신녀'(1934)의 한 장면[사진=임대근 교수 제공]

아편전쟁이 끝나고 개항한 상하이(上海)는 수십 년 만에 대도시로 성장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에 땅을 빌려준 까닭에 서양 문물도 넘쳐났다.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까이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닝보(寧波) 같은 곳부터 멀리 베이징(北京), 광저우(廣州), 청두(成都) 등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상하이는 그렇게 이민자들의 도시가 됐다.

도시는 산업이 필요했다. 새로운 도시를 위해 건설업이 발전했다. 항구라는 이점 때문에 해운업, 유통업도 번창했다. 2차 산업이 흥성하자 서비스업도 뒤따랐다. 상하이는 금세 화려한 소비와 오락 도시로 부상했다. 상하이의 산업을 지탱한 힘은 이민자들의 동향 네트워크였다. 같은 지역 출신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함께 돈을 벌어들였다.

상하이 산업을 일으킨 이들 중에서 여성은 배제됐다. 동향 네트워크에도 끼어들지 못했다. 근대 이후 상하이에서 여성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모던한 도시로 거듭난 상하이의 ‘밤 문화(night culture)’에는 다양한 방식의 매춘이 성행했다.

프랑스 학자 크리스티앙 앙리오(Christian Henriot)는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탐구한 책에서 당시 상하이 ‘기녀’가 고급 콜걸, 무희, 마사지사, 거리에서 손님을 유혹하는 여성 등으로 계층화 돼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 ‘신녀(神女)’(1934)는 ‘거리의 여자’를 다룬다. 혼자서 어린 아들을 키우는 한 여인은 밤이 되면 거리로 나가 손님을 기다린다. 희대의 여배우 롼링위(阮玲玉)가 맡은 캐릭터는 어머니와 매춘부라는 이중 정체성을 완벽히 연기한다.

낮에는 아들을 향한 모정, 밤에는 몸을 파는 여인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청나라 전통 복식인 치파오(旗袍)는 여성의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옷으로 진화하면서 ‘밤의 여인’ 캐릭터를 표상하는 소재로 활용된다.

롼링위는 1920~30년대 상하이 은막을 주름잡던 대스타였다. 그녀는 무성영화가 대세였던 당시 ‘중국의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 1927년 데뷔작 ‘이름뿐인 부부(掛名的夫婦)’ 이후, ‘들꽃(野草閑花)’(1930), ‘세 모던 여성(三個摩登女性)’(1933), ‘신여성(新女性)’(1935) 등 출연작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다.

‘신녀’는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녀의 가정사와도 연관이 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기녀로 살았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상황을 겪은 그녀는 시나리오를 읽고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그러나 롼링위는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과 미디어의 집요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출연작들은 중국영화의 ‘전설’이 됐다. 그녀의 삶을 그리기 위해 홍콩감독 스탠리 콴은 ‘롼링위’(1991)라는 영화를 만들어 헌정할 정도였다. 영화에서 롼링위는 장만위(張曼玉)가 열연했다.

어느 밤,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그녀는 다급히 몸을 숨긴다. 그러나 숨어들어간 곳은 건달의 집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건달은 그녀가 고이 모아온 돈을 갈취한다. 아들 하나만큼은 잘 가르쳐 보고 싶었던 그녀의 꿈은 자신의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감이 된 아들을 보면서 부서진다. 건달의 갈취와 핍박에 견디다 못한 그녀는 끝까지 저항하지만, 아들마저 위협당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고 건달을 죽인다. 결국 그녀는 감옥에 갇히고 만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모던한 도시로 급성장한 상하이의 면면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여성과 어린이의 모습도 그려냈다. 특히 어머니와 매춘부를 오가는 정체성 횡단 캐릭터를 통해 이런 상황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폭로했다.

‘신녀’는 고대 중국어에서 ‘여신’이라는 뜻이었다. 이상적인 여성의 상징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현대 중국어는 이 말을 ‘성적인 기교가 좋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화 제목 자체에 이미 이중적 의미가 들어있던 셈이다.

영화는 억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착취하는 남성에게 스스로 처벌을 가하는 여성을 창조한다. 비록 그녀 역시 현실 권력의 처벌 대상으로 전락하지만, 그런 복잡한 현실과 이상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신녀’는 빛나는 여성영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우융강(吳永剛)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 한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중국영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으로 남았다. 감독 또한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1938년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연지루(胭脂淚)’를 다시 연출할 정도였다.

‘연지루’는 ‘신녀’의 유성영화 버전이었다. 그러나 주연을 맡았던 롼링위가 세상을 뜬 뒤였기 때문에 ‘연지루’의 주연은 후뎨(胡蝶)에게 돌아갔다.

70분 남짓한 무성영화이지만 오늘날 보더라도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 1920년대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상, 은유와 상징으로 구성된 미장센, 클로즈업과 롱 쇼트를 오가는 카메라워킹 등을 보고 있노라면 적잖은 이들이 ‘최고의 중국영화’라는 찬사를 보내는 까닭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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