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디지털 레닌주의와 차이나 모델

2017-10-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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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초빙 논설위원 · 정보사회학 박사]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제19차 공산당 전국 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은 3시간 30분간의 연설 도중 ‘새 시대’라는 단어를 36회나 사용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필요하고, 중국 공산당은 그 선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나온 표현이다.

시진핑은 '공산당의 지도 없는 중국의 부흥은 망상'이라면서 새 시대에는 중국 특성에 맞는 사회주의 구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새 시대와 중국식 사회주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의 연설문에 어느 정도 나와 있지만 외부인, 특히 서구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시대에 퇴행적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를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의견은 독일의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제바스티안 하일만 연구원에게서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하일만은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생존을 위해 '디지털 레닌주의'의 실현을 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레닌주의는 공산당의 독재 또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권력 독점이 본질이다.

하일만은 이 레닌주의 앞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묘사한다. 시 주석이 역사적으로 실패한 레닌주의를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 부활시켜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고도로 발달한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를 이용해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고 정교한 플랜을 수립해서 미래형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시진핑의 이념이 결국 디지털 레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새 시대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지만 결국 새로운 것은 없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이 하일만 칼럼의 내용이다. 개방과 공유의 인터넷 시대에 다시 레닌의 유령이 맴도는 것은 분명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일만의 디지털 레닌주의는 중국 입장에서는 냉소적인 표현이다. 서구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지향해야 할 곳은 네트워크의 확장과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다.

인터넷은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통로를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신속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자발적으로 집회를 결정하면서 시민사회의 질적 수준을 올린 사례는 많다. 인터넷은 자유와 연대의 상징이 됐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기초가 됐다. 이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인터넷이 레닌의 유령을 소환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구 소련의 KGB가 쉽게 연상된다.

디지털 레닌주의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이런 긍정적 요소들이 오히려 국가 권력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독점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그러나 디지털 레닌주의가 시진핑 중국의 비판에 적용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에서 근무했던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 사건이 그 한 사례다. CIA와 NSA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정당한 절차 없이 개인의 정보를 무차별로 열람·수집해 왔다. 근무 중 국가 권력의 부도덕성을 알게 된 스노든은 정보기관이 불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폭로했다. 폭로한 내용을 보면, 미 정보기관은 빅 브러더가 되어 인터넷과 연결된 사람들의 모든 정보를 상시 검열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개방과 공유를 상징한다지만 반대로 모든 사람을 감시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인터넷은 하나의 수단이다. 국가에 중요한 것은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미국과 중국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1인 1표에 의한 전통적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차이나 모델이라고 하는 중국 고유의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차이나 모델은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발전과 정치 시스템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돼 왔다. 이 중 정치 시스템의 주요 내용은 바닥은 민주주의, 중간 계급은 실험공간, 상위 지도층은 현능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 현능주의는 국가의 주요 지도자 선출을 서구식 민주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지도층 내부에서 발탁하는 시스템이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지만 현재까지 중국은 성공적으로 경제 발전을 해 왔고 과학 기술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했다.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를 쓴 미국의 정치학자 대니얼 A 벨에 의하면 중국의 일반인 대다수는 완전한 선거 민주주의의 시행이 중국을 과거의 혼란과 대외적 굴욕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걱정한다. 현재 중국의 지역 자치 단체장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다.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이미 50%를 넘었다. 하일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시 레닌주의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미 대다수 인민들은 자본주의 공기를 마시고 민주적으로 살고 있다.

차이나 모델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능한 최고 지도자들에 의한 폐해를 여러 번 겪었던 우리로서는 더 그렇다. 선택지는 많은 것이 좋다. 시진핑의 새 시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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