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⑳] 韓 '유연한 법치'...中 '엄격한 법치'

  • 글자크기 설정

한·중 영화 속 법에 대한 시각

영화 '노포아' 포스터.[사진 출처=바이두]

제1회 서울 어워즈에서 나문희씨가 연기 인생 56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도 재조명되고 있다.

9월 말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는 화려한 액션이나 볼거리, 스타 감독과 톱배우를 앞세운 블록버스터 영화들 사이에서 스토리와 연기력으로 승부한 ‘착한 영화’로 제12회 파리한국영화제에서도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영화는 억척스럽고 오지랖 넓은 옥분할머니와 원칙주의자 민재의 이야기다. 온 동네를 돌며 사소한 위법 행위라도 찾아내 민원을 넣는 옥분할머니는 주민과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기피 대상 1호다.

그러나 이는 위안부였던 과거의 아픔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행동일 뿐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밥 대신 라면을 먹는 학생에게 밥을 차려주는 배려심과 따뜻함을 지닌,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연설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책임감 있는 인물이다.

원칙주의자 민재는 옥분할머니의 민원에 ‘원칙’으로 맞서지만, ‘원칙’에 의해 옥분할머니의 연설기회가 박탈당할 위기를 맞이하자 앞장서 법의 유연성을 요구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스토리 전반에 법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국영화 ‘노포아(老炮兒)’ 또한 규범에 대한 이야기다. ‘노포아’의 주인공 육형은 싸움에도 규칙이 있다는 강력한 원칙주의자다.

노점상을 단속하는 경찰과 노점상 주인의 싸움을 중재하면서 육형은 경찰에게 노점상 주인의 절실한 상황을 고려해 부드러운 태도로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살기 위해서라도 법을 어긴 것은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에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노점상 주인을 설득한다.

이처럼 육형은 끊임없이 규범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법 적용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는 인간보다 법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영화는 그의 이러한 법치주의를 꼭 필요한 가치로 묘사한다.

한국과 중국은 예로부터 법보다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교가 통치기반이던 조선시대에는 법보다 인(人) 사상을 우선시했다. 애민(愛民)은 왕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백성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는 왕이 성군으로 치하를 받았다.

‘목민심서’는 “빌린 곡식이나 돈에 관한 송사는 마땅히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엄중하게 빚을 독촉하기도 하고 때로는 은혜롭게 빚을 덜어주기도 해야 하며, 굳이 원칙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다”, “형벌은 백성을 바로잡는 데 있어서 말단의 방법이다. 수령이 스스로를 다스리고 법을 엄정하게 받들면 백성은 죄를 범하지 않게 되니 형벌을 없애도 좋을 것이다” 등 융통성 있는 법 적용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 유교문화는 현대사회로 이어져 법을 기반으로 한 근대 국가에서도 법보다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강조하는 유연성 있는 법 적용이 미덕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도 법은 사람이 집행하는 것으로 사람이 시행하지 않으면 좋은 법이라도 쓸모가 없다는, 법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인경법(重人經法)’ 사상이 존재했다.

또한 중국에서는 법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법 위에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상이 기저에 깔린 ‘관시(關系)’의 영향으로 법보다 사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성향이 부정부패와 연결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법치주의를 강조해왔으며 ‘치국이정(治國理政)’을 지도이념으로 내세웠다. ‘치국이정’의 기본인 법치는 법률에 의거해 국가를 다스리는 것으로 인치(人治)와 반대된다. 시 주석은 지난달 18일 당 대회 개막 연설에서도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법치 사회주의를 강조했으며, 이러한 ‘시진핑 사상’은 최근 공산당 헌법인 ‘당장(黨章·당헌)’에 삽입됐다.

과거와 달리 복잡한 세상에서 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법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점차 각박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우선시되는 인치가 ‘사람 냄새 나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백해린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박사)]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