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25시] 문재인 피자도 좋지만…호텔방 전전하는 예산실

2017-12-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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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귀가는 기본…200여명 업무 볼 공간도 협소

야근 수당으로도 부족…효율적 업무 시스템 개선 필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국정감사 준비를 하고 있다.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격려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에 피자 350판을 제공한 것이 화제다.

이날 피자를 제공한 업체는 순식간에 포털 검색순위 상위를 차지하는 등 광고 효과도 톡톡히 얻었다. 기재부 예산실이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4층은 때아닌 피자 냄새로 가득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소기업 제품을 이용했다는 부분에서, 직원들은 그간의 노고를 보상 받았다는 점에서 서로 나쁠 게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직원의 반응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년 예산안이 힘겹게 국회를 통과했지만, 벌써부터 2019년 예산안을 걱정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내년 11월에 또다시 고생할 생각을 하니 피자가 목에서 넘어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재부 예산실은 예산안 통과 한달 전부터 거의 합숙소 신세다. 언제부턴가 매년 예산 시즌만 되면 호텔방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특히 기재부가 정부세종청사로 이전하면서 부침은 더 커졌다. 과장급 이하 직원들 대부분이 집을 세종시로 옮기면서 호텔방 신세가 불가피해졌다.

업무 공간도 비좁아서 숨쉴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코노미석보다 좁은 업무 공간에 200여명이 다닥다닥 붙어 기약 없는 예산안 심사에 대기하는 관행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이다.

통상 퇴근도 새벽 2~3시가 기본이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하려면 집에 귀가한다는 자체가 호사다. 결혼한 여직원들은 짬을 내 국회 복도에서 영상통화를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공직사회가 각종 디지털화로 인해 효율적 업무를 위한 시스템을 갖췄지만, 11~12월 예산실은 이런 시스템이 모두 무력화되는 시기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피자가 반갑지 않다는 표현은 아니다.

다만 지금과 같은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는 게 공통적인 생각이다. 예산실 직원 대부분이 12월 일정을 잡지 못한다. 언제 예산안이 통과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린 탓에 아예 일주일 동안 드러눕는 직원도 적지 않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예산실 직원들이 예산 시즌마다 고생하는 모습이 못내 안타깝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김 부총리는 지난 4일 예산안이 극적으로 국회 문턱을 넘자 “기재부 예산실 직원 90%가 집이 세종이라 4주째 숙식을 하고 있다”며 예산안 통과를 직원들의 공으로 돌렸다.

그러나 내년 연말에도 이런 현상은 또다시 반복된다. 제도적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가 따라야 하는 이유다.

국회가 끝나고서도 200여명이 꼼짝 못하고 새벽까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근로시간 단축’과 배치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대통령이 보내준 피자도 좋지만, 이에 합당한 초과 수당 등을 제공하는 것이 더 좋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예산안 통과 시 10만원씩을 대통령 문양이 새겨진 봉투에 넣어서 줬다.

매년 반복되는 기재부 예산실의 과도한 야근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이의 괴리는 적응하기 어렵다. 문 정부가 내년에는 이런 시스템을 개선할 묘수를 들고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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