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호칼럼] 2018 무술년(戊戌年), 율령정비(律令整備)부터 시작하자

2018-01-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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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칼럼]

 

[사진=박장호 초빙논설위원·서울대교수(산학)]



2018 무술년(戊戌年), 율령정비(律令整備)부터 시작하자

새해 무술년이 밝았다. 고종은 재위 32년 차에 그간 사용하던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의 사용을 공포하여 당시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변경하였다. 양력 사용이 공포되었지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제사와 혼례 등에서 음력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다가 1908년부터 모든 국경일이나 달력이 양력화되면서 그레고리13세의 태양력이 우리나라 사회에 정착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항상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이루어진 60갑자(甲子)의 달력을 병기하고, 신년에는 토정비결도 재미삼아 보며, SNS에는 올해는 황금 개띠 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무술년(戊戌年)의 술(戌)이 개를 뜻하는 것이고 무(戊)는 다섯 가지 색깔 중에서는 황톳빛을 뜻하니 노란색 또는 황금색으로 부르면서 황금 개띠 해라고 하는 것 같다.

명리학에서 얘기하는 무(戊)는 5행(五行) 중에서 토(土)를 뜻하고 대지가 모든 것의 어머니이듯이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는 특성을 가진다고 한다. 명리학상 음양의 조화가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는 기운을 가진다면 무술년 올해에 우리 사회는 무엇을 생산해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잔잔한 것들 여러 가지보다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을 먼저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정부규제 전체의 개혁방향을 조율하고 법령체계를 깔끔하게 정비해야 한다. 사실 규제 개혁이라는 말은 규제가 철폐의 대상이고 악(惡)이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시장경제는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지만 빈익빈 부익부라는 극단적 양극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다른 나라를 침탈해야만 자국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제국주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반작용으로 소련 공산주의가 등장하고 시장경제에도 정부가 개입하면서 수정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되었다. 

정부의 개입이 과도해져서 개인의 근로의욕을 꺾는다고 주장한 미국 경제학자가 있었다. 아서 래퍼(Arthur Laffer)는 호텔에서 식사 중 냅킨에다 후일 래퍼 커브(Laffer Curve)라고 알려진 그림 하나를 그렸다. 미국의 세율이 적정치를 초과해 있기 때문에 개인이 더 이상 근로할 의욕이 없어지고 노동의 감소는 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은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래퍼의 주장은 이후 공급중시 경제학이라는 한 분야를 창시하면서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정책인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다. 정부의 개입이 과다하니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영국에서는 대처(M.Thatcher) 정부의 대처리즘의 바탕이 된다. 

규제는 선(善)일까 악(惡)일까? 시장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경우 규제는 적을수록 선이고 작은 정부가 가장 이상적이라 주장한다. 시장경제로 양극화가 진행되어 사회의 응달이 늘어만 가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정부가 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내에서도 시카고대를 중심으로 한 시카고 학파는 작은 정부를 옹호하고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를 주장한다. 프랑스는 규제를 악도 선도 아니고 실생활에서 필요한 신호등 정도로 평가한다. 그래서 프랑스는 규제 개혁이 아닌 규제 관리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자기네 신호등이 가장 정교하게 작동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큰 정부가 좋은가 작은 정부가 좋은가는 미국식 시장경제냐 소련식 계획경제냐로도 연결될 수 있는, ‘정체(Political Regime)’를 흔드는 거대담론이다. 시야를 다시 국내로 돌리면,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분야는 규제가 너무 많고 어떤 분야는 규제가 너무 적어 신호등 작동에 에러가 생긴다. 세계가 선점하려고 뛰고 있는 4차 산업분야에서는 쓸데없는 규제가 너무 많다. 규제 하나하나가 정부 관료들의 권한과 관련되어 있어 민간에 길을 향도해야 할 필수적인 신호등이 작동되지 않아 직진을 해야 하는지 정지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든 규제는 법령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규제를 악으로 간주하고 폐지하거나 완화하려는 경우 법령을 폐지하거나 개정하여야 한다. 정부가 사회의 그늘진 곳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도 법령에 근거가 없으면 적극행정을 펼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말로 편하게 얘기하는 모든 규제는 사실 법령으로 조문화되면서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이 법령체계가 간단명료, 단순명쾌하지가 않다. 조문의 예외규정 속에 다시 예외규정을 둬 해석이 난해한 조문들이 많다. 또 법률에는 근거만 두고 백지 위임하여 하위규정에서 진짜 중요한 사항을 정하게 골격입법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행정 편의주의적이고 촘촘하지 못한 입법이 발생할 소지가 생긴다.

우리나라 법체계는 국회가 정하는 법률,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대통령령, 시행규칙이라고도 불리는 부령의 3단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개인의 일상과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상당수의 규제는 각 관청에서 운영하는 예규, 고시, 통첩 등의 이름으로 녹아 있다. 시행규칙 밑으로는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나 법제처의 법령심사에서 제외되어 제3자적 관점에서 볼 때 현실과 괴리되고 객관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여기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난 다음부터 각 도나 서울시에서도 조례를 만들고 군청이나 구청에서도 조례를 만든다. 각 자치단체가 만드는 조례는 법률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군·구별로 다른 경우나 광역시·도 사이에서도 위임의 범위나 수준이 다른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찾아보기에는 헷갈리고 복잡하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간단명료하고 단순명쾌하게 규범을 정리해주는 것이 사회운영의 기본이자 더 나은 시작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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