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포제련소 논란] ⑨ “제련소 문 닫으면 어째?” 깊어지는 주민들 한숨

2018-02-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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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풍 석포제련소에서 갓 생산된 아연괴가 동일한 수량에 맞춰 쌓여 있다.[사진=채명석 기자]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는 석포초등학교와 석포중학교가 있다. 각각 1935년, 1975년 개교한 면내 교육시설이다.

2017년 기준 석포초등학교에는 110명의 학생과 40명의 유치원 원생이, 석포중학교에는 34명이 다니고 있다.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해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지면서 중장년층만 남는 현실이 심화되면서 지역 내 학교들이 학생이 없어 문을 주변 학교와 통폐합 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석포면은 다르다.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지만, 학생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 주민 수 2200여명의 작은 마을에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 전체 주민이 가족···학생 수도 늘어
(주)영풍 석포제련소 덕분이다. 협력업체 포함 160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석포제련소에서 일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1600여명의 직원들 가운데 400여명 정도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600여명도 사실상 석포제련소와 연관된 직업을 갖고 있다.

석포제련소에서 500여m 떨어진, 400여m 길이의 도로 하나가 마을의 중심가다. 이 도로 주변에 편의점 한 곳과 식당 서너 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 그는 30여 년 전 단돈 25만원을 들고 석포면에 왔다. 석포제련소에 취직해 같이 일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룬 그는 정년퇴직 후 식당을 차렸다. 손님은 석포제련소 직원들이다.

A씨는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었고, 남편도 만나고 애들도 키워 도시로 보냈으니, 석포면은 고향과 다름없다”면서 “이 곳에 있는 모든 식당과 가게 주인들도 석포제련소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차린 것이다. 모든 직원들의 가정사를 서로 꿰뚫고 있을 만큼 친분이 두터우니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에게 아파트·식비 사실상 무상 제공
석포제련소는 오지에 와서 일하느라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혜택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복지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직원들을 위해 총 870세대의 사원 아파트를 운영하고 있다.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 부부에게는 한 채를, 독신 직원들에게는 한 채에 2명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 매월 내는 아파트 관리비는 1만원이 채 안 된다. 문화 시설이 전무한 상황을 감안,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인터넷과 IPTV를 사용할 수 있다. 석포제련소는 결혼한 직원과 혼자 생활하기를 즐기는 독신 직원들을 위해 아파트를 추가 건축하거나 기존 노후화 된 아파트를 재건축 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제련소 내 식당은 한 끼 당 1280원만 내면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 차려 먹을 필요 없이 이 곳에서 식사를 하면 된다. 관리비와 식비 모두 상징적으로 받는 것일 뿐 사실상 무료다.

석포제련소에서 근무하는 한 독신 직원은 “석포제련소에서 받는 월급 수준이 다른 기업들에 높은 편이다. 또한 생활하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지출괴는 거주비와 식비 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축하는 돈이 많다”면서 “어떤 직원은 3년간 일하고 1억원을 모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석포제련소의 연간 매출액은 1조원이 넘는다. 경상북도 북쪽 지역에 소재한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큰 회사이며, 대기업 공장이 몰려 있는 구미시 입주기업들과 비교해도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큰 규모다. 매년 지출하는 비용 가운데 인건비는 450억원, 시설 유지비는 400억원이라고 한다. 이 돈의 대부분이 석포면 주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지역경제가 커지고 있다. 농사나 축산을 주업으로 하는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 조금은 부담스러워 할 수 있는 의료복지 지출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 의혹에도 불구하고 석포면에는 장수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취업 희망 외지인도 증가 “이력서 쌓여 있어요”
석포제련소가 무엇보다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석포초등학교와 석포중학교 학생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결혼한 젊은 직원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기반으로 미래를 계획하며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녀의 교육 문제인데, 이 곳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도 도시지역 학생들과 비교해 교육여건이 열악하지 않다는 것임을 확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석포초등학교의 경우 지난 2013년 도서관(청솔도서관)을 준공했다. 이 학교는 적어도 폐교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석포제련소 관계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주 들리는 마을이라면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석포제련소는 매년 정기적으로 학습지와 도서를 무상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석포제련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외지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는 직원이 필요할 때 사람을 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은 쌓여 있는 이력서를 보고 고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력서 스펙을 보면 창원, 부산, 군산 등지에 있는 우리보다 더 큰 회사에서 일했던 이들이 많은데, 경제상황이 악화되어 회사가 문을 닫아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다. 우리로선 인재를 뽑을 수 있어 좋지만, 국가 경제를 놓고 봤을 땐 안타까운 심정이다”고 전했다.

◆제련소 폐쇄설에 주민들 불안···태백시도 휘청
석포제련소의 경제권에는 강원도 태백시도 포함된다. 도가 다르지만 석포면은 봉화군, 안동시보다 태백시가 더 가깝다. 차로 30분만 달려가면 되기 때문에, 직원들은 병원을 이용하거나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거나. 외식과 영화 관람 등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을 때는 태백시로 간다.

태백시로서도 석포제련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시민들이 나서서 강원랜드 유치에 반대한 뒤 시를 활성화하기 벌인 다양한 경제 활성화 대책에 연이어 실패한 태백시의 경제는 매우 좋지 않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석포제련소 직원들이 푸는 돈의 규모가 결코 적지 않다. 또한 태백시에 거주하면서 석포제련소로 출퇴근하는 직원 수도 4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런데, 석포제련소는 폐쇄 논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석포면 주민들, 더 나아가 태백시 시민들조차 석포제련소가 없어질 수 있다는 소문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석포제련소에 대해 어떻게 비쳐지고 있느냐고 묻는 A씨는 “우리에게 있어 석포제련소는 ‘삶’이다. 그런 곳이 없어진다면 석포면 마을을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우려하는 만큼 환경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우리가 괜찮다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근처 식당을 운영하는 B씨도 “(폐쇄는)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외지인들이나 언론 보도를 보면 정말로 무슨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철렁인다”면서 “환경단체의 주장만 듣지 말고 우리의 상황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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