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가장의 숙명,선물 그리고 성적 욕망 누드" 사석원 희망낙서..가나아트센터

2018-05-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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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희망낙서 '출범' '희망낙서' '신세계'..첫 누드화..6월 10일까지

"어린 시절 기침을 많이 했다. 20세가 되고 나서 체질이 바뀌면서 기침이 없어졌다가 요즘에 다시 기침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도 기침이 심했다."

최근 만난 사석원(58) 작가는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어머니는 30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5년째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본인의 건강도 나빠져 최근에는 큰 수술(뇌수술)도 했다.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청춘' 시절을 돌이켜보고 그 시절에 가졌던 욕망과 젊음, 투지를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내 신작 40여 점을 모아 '희망낙서(希望落書)' 전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6월 10일까지 연다.

[사석원 작가가 가나아트센터에서 '태양과 호랑이와 여인'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출범(出帆)', '희망낙서(希望落書)', '신세계(新世界)' 총 3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가족을 돌보는 고릴라로 변하고, 꽃을 싣고가는 당나귀로도 변한다. 어떨 때는 권법을 하는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부엉이가 되고 한다. 또한, 청춘 시절을 떠올리며 여성 누드도 그려냈다.

사석원 작가는 "아버지가 저랑 24살 차이이다. 띠가 같다. 아버지께서 병원에 계신지가 5년 정도 됐다. 영원히 소년 같으신 것 같은 분이 병상에 계시고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니까 연민이 느껴졌다"라며 "뭔가 나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내가 소멸해가는 느낌을 받는다. 동력이 끊겨 간다. 가장 활발했던 시기가 청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에게 물어보듯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그림으로 풀어봤다"고 입을 열었다.

[사석원 작가가 가나아트센터에서 '꽃'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그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걷어내기'라는 새로운 화법을 시도했다.

기존에는 물감을 두텁게 칠했다면, 이번에는 물감을 나무판으로 뭉개서 걷어내고 그 위에 다시 색칠했다.

사 작가는 "과거에는 구축하고 뭔가를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하는 표현이었다면 이번에는 '놓는 연습'을 위해 덜어내는 표현을 쓰고 싶었다"며 "지운다고 해서 다 지워지진 않는다. 흔적도 남고 그것을 발판으로 또 다른 시도를 해봤다. 지웠을 때 남은 색들이 먼저 색보다 훨씬 맑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바람' 작품]


1부 '출범(出帆·배가 항구를 떠남) : 어떻게 살 것인가' 연작이 전시된 1층에는 고릴라를 통해 가장의 숙명적인 삶을 표현한 작품이 모여있다.


"주제가 가장에 대한 얘기이다. 전체 주제는 청춘에 관한 것인데 청춘이라면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중간 과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고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가장이 된다는 것이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곡예단' 작품]


호방한 필체를 중요시하는 사 작가는 세필로 작업하는 것이 굉장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가장의 비애를 그려내기 위해서 '한 땀 한 땀' 아주 세밀한 붓으로 그려냈다.

사 작가는 "삶이라는 것이 흔하게 항해라고 한다. 그래서 청춘이라고 하면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는 건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지고 그것을 세필로 그려봤다"고 말했다.

캔버스를 담아내는 프레임 또한 작품의 연장선에서 작업했다. '출범'이라는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액자 테두리에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온 폐선(廢船) 조각을 붙여 물감으로 칠했다.

'꽃' 작품에서는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가장으로 보이는 고릴라가 소중한 동물들을 품에 안고 외줄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서 있다. 외줄 주위에는 표범, 악어 등 무시무시한 포식자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작가는 가족을 보호하는 고릴라가 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작품에 꽃이라는 글씨를 쓰고 제목도 '꽃'이라 했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출범' 작품]


바람 풍(風)자가 새겨진 '바람' 작품에서는 고릴라가 재주를 부리며 닭을 보호하고 있다. 닭 주위에는 악어를 배치해서 살벌한 현실 사회를 상징화했다.

고릴라를 그리기 위해 과천 서울대공원을 비롯해 일본의 우에노동물원, 프랑스의 파리동물원을 많이 찾았던 사석원 작가는 고릴라의 눈과 신체적 특징에서 가장의 모습을 찾았다.

"사람보다도 순수한 눈을 가진 동물이 고릴라인 것 같다. 고릴라의 눈을 실제로 보면 굉장히 깊고 연민의 뭔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뭍에 사는 고릴라 수컷은 4~5년 정도 지나면 등 쪽이 회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실버백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다. 가장의 고릴라를 전부 실버백 고릴라로 표현해 봤다."

작품에는 동양화의 낙관처럼 표식을 그려져 있다. 바를 정(正)자라든지 일할 노(勞)자 등은 사 작가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몇 가지 덕목들이다.

'곡예단' 작품에서는 뗏목에서 고릴라가 마치 광대처럼 코끼리 등 위에 올라가 곡예를 하고 있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서도 뭔가 묘기를 보이면서 사람들한테 재미를 줘야 하는 가장의 숙명적인 모습이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희생' 작품]


작품에 실제 표범 가죽을 붙인 '출범' 작품도 눈에 띈다.
작품에서는 초식동물인 두 고릴라가 문어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
필요 없는 것을 가지려고 싸우고 쟁탈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를 감싼 고릴라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있고, 실제 표범 가죽을 붙여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상징화했다.

'희생' 작품에서는 고릴라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 가장의 숭고한 모습을 표현했다.

사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동물들도 인간 이상으로 고뇌를 많이 하는구나! 였다"라며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뇌를 인간 이상으로 크게 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런 모습을 이번 고릴라를 통해서 한번 담아 봤다"고 설명했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꽃과 당나귀1' 작품]


2부 '희망낙서(希望落書) : 지웠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에서는 다양한 동물군이 등장한다. 작가는 호랑이, 부엉이, 소, 당나귀, 코뿔소 등에서 청춘 시절의 표상, 특히 그 시절을 대변하는 청춘들의 열망과 번민의 상징적 기호를 발견하여, 이를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색채와 힘 있는 붓질로 표현했다.

1부의 고릴라 연작과는 다르게 화폭에 마치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껍게 그린 다음에 커다란 나무로 물감을 밀고 부분적으로 덧칠해서 얇게 그렸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무림제왕-호랑이' 작품]


사 작가는 "우리가 청춘을 돌이켜 보면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고 가진 거라고는 정말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좌절을 지우고 다시 그 위에다가 희망을 덧칠한다는 느낌으로 표현해봤다"고 강조했다.

색은 한번 지웠을 때 훨씬 더 채도와 명도가 올라가고 더 밝은 느낌을 준다.

'청월'과 '석양의 당나귀' 작품에서는 당나귀가 꽃을 한 아름 지고 있다.
꽃은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고, 작가는 청춘을 잘 보냈다는 보답으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호랑이와 여인' 작품]


'무림제왕-부엉이', '무림제왕-호랑이', '월하결투' 등 작품에서는 부엉이와 호랑이, 황소가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제가 청춘이었을 무렵 우리나라에는 무협지나 권법, 이런 것들이 유행했었다. 이소룡의 시대이다. 남자라면 당연한 거겠지만 힘과 권력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학교에서 뭐 특별난 게 없었던 나는 영웅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그것을 끄집어내서 그려봤다."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사석원 작가 '당나귀와 여인' 작품]


3부 '신세계(新世界) : 오, 황홀한 무지개여'는 사석원 작가가 처음 시도한 '여성 누드' 작품이 출품됐다. 

사 작가는 "그 시절 가진 거라고는 성적 욕망이 가득 찬 몸뚱이밖에 없었던 것 같다"며 "그림들은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상상으로 그린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그려봤다. 가장 생명력이 왕성했을 때의 시절을 야성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여인과 소', '호랑이와 여인', '태양과 호랑이와 여인', '수탁과 여인' 등의 작품에서는 여인의 누드에 동물을 함께 그려 넣어 원초적 욕망과 야생성을 강조했다.

환갑을 앞둔 사석원 작가는 청춘을 그리면서도 청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특별히 그때로 돌아가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것은 없다. 아쉬운 점이 더러는 있지만, 후회 없이 많은 것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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