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스토리-마화텅③]싸이월드 아바타를 200% 베낀 QQ쇼의 매력

2018-05-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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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기법도 진화...텐센트의 창조적 모방이 패션브랜드를 흔들다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그 뒤 ICQ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브랜드를 사들인 미국기업 AOL은 ICQ의 장점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스턴트 메신저에 밀리면서, 시장에서 저절로 밀려났다. 강한 브랜드를 샀다고 강한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브랜드가, 급변하는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 어떻게 진화를 거듭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정글의 법칙'은, ICQ와 QQ의 사례를 보면 실감난다. 

QQ를 성공시키던 무렵의 마화텅을 눈여겨보는 일은, 지금 새로운 스타트업 '음모'를 꾸미고 있는 많은 모험가들에게 의미있을지 모른다. 창업 초기 결단의 순간들이 있던 그 '숨가쁜 지점'에 관해, 마화텅은 자주 이런 고백을 했다. 
 

[방송에 출연한 마화텅.]



# 처음엔 별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

"사실 저는 별 뚜렷한 생각이 없었어요. 처음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죠. 그런데 창업은 고생 길이었죠. 주말 아침에 일어나도 수도세와 전기세 걱정을 해야하는 게 창업이더라고요. 그냥 샐러리맨이라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는 게 사업이었죠. 하지만 고민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니 새로운 기회가 열리더군요. 우선 한 단계씩 밟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고, 그런 가운데 투자자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도록 뭔가 '꺼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게 또한 중요해요."

우리는 자주 성공적인 디지털 창업자의 비밀을 들여다보려 할 때, 그가 탁월한 비전과 맹렬한 열정, 그리고 거침없는 추진력을 지녔을 거라고 지레짐작으로 믿어버린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가, 변화의 속도가 비교적 느리고 생태계가 안정기에 들어간 상태였던 '산업사회'의 성공자들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적용한 착시일 수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고, 미래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존재는, 어쩌면 디지털 생태계에선 치명적으로 좌절하고 포말로 사라져간 무수한 실패자의 그림자일지 모른다.

# 현재를 섭렵하며 아이디어를 붙여나가는, 창조적 모방의 마술

성공모델을 거듭 배신하는 성공모델이야 말로, 이 분야의 특징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마화텅의 말들은 오히려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뚜렷한 생각이 없는 창업, 현재의 상황들을 섭렵하며 조금씩 아이디어를 붙여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투자를 받는 것. 이런 프로세스가 오늘의 마화텅을 만든 힘이었다고 볼 수 있으리라. 다시 마화텅의 생각 한 가닥.

"텐센트는 미래 계획을 너무 멀리 잡지 않습니다. 앞으로 3년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위기와 기회가 올지 예측하기 어려우니까요. 큰 방향이야 볼 수 있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에 그 기회를 내가 꼭 따내야 한다는 보장이 없죠. 현재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기회를 엿볼 수밖에요."
 

[마화텅]



# 사람을 모았는데, 팔 물건이 뭐지?

2002년 QQ는 사용자수 1억명을 넘기는 빅뱅을 시작한다. 하지만 마화텅은 마음속 깊이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저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 사용자수의 폭발이 내게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안겨줄 것인가. 그때만 해도 몹시 막연했다. 사람들이 들끓는 거리를 만들었는데, 무슨 장사를 해야할지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문득 한국의 싸이월드 돌풍을 주목했다. 홈페이지와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도토리 캐시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마화텅은 그걸 그대로 베끼려 들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ICQ의 소송 충격이 그의 마음속에 내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함부로 베끼기보다는 좀더 신중한 모방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을 수 있다. 그는 싸이월드의 장점을 꼼꼼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 메신저가 뭘 했기에, 패션업체에서 난리가 났을까

이후 내놓은 것이 유명 브랜드 상품을 아바타에 입히는 '놀이'였다. 싸이월드가 아바타에 입힐 '예쁜 아이템'을 팔았다면, QQ는 '진짜 옷'을 입히기로 한 것이다.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이 창조적 모방은 싸이월드와는 다른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QQ쇼'가 등장하자, 패션 브랜드들이 난리가 났다. 아바타를 꾸미려는 사용자들의 캐시 아이템 구매가 급증하자, QQ쇼에 입점하겠다고 텐센트로 줄줄이 찾아왔다. 사용자 쪽으로 현금이 들어왔을 뿐 아니라, 입점브랜드를 통해 막대한 추가 수익이 발생했다. 마화텅은 '창조적 모방'이 낳은 엄청난 폭발력을 그때 맛보았다. QQ브랜드의 '독립'과정에서 일군 성공과는 또다른 경험이었다. PC 인터넷메신저의 전성기였던 2009년 QQ쇼는 10억명 가입자를 거느린 슈퍼메신저로 성장했다.

# 성공의 고지에 올라보니, 벌써 그곳이 꺼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화텅은 안심할 수 없었다. 성공을 거둔 자리가 바로 위험한 자리였다. PC 메신저가 슬그머니 한물 가고 있었다. 대신에 솟아오르기 시작한 건 모바일 시장이다.

2010년은 시장의 기류로 보자면 모바일이 디지털 시장의 중심이 되는, '모바일 원년'이라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강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스턴트 메신저가 주저앉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메신저와 왓츠앱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났다. 한국에선 네이트온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신 카카오톡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이런 시장의 교체기에 QQ쇼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카피캣의 귀재 마화텅은 그때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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