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한국경제는 ‘주눅’ 들지 말고, 정부 여당 ‘자만심’ 버려라

2018-06-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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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한국 대 독일전이 주는 교훈

 

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겸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스웨덴 멕시코에 지고 독일을 남겨둔 한국 축구의 러시아 월드컵축구대회 예선 탈락은 확정적이었다. 그제 저녁식사 모임을 끝내고 광화문 광장을 지나다 응원 관중이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든 것을 보면서 ‘지는 경기’를 구경 나온 젊은이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길에 지인으로부터 맥주 마시며 독일전을 함께 보자는 전화가 왔지만 가망 없는 경기를 시청하러 호프집에 가느니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잠옷바람으로 TV 앞에 앉았다.

희박한 경우의 수를 예측하는 기사가 넘쳐났으나 예선 탈락이 확실한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기보다는 한국이 한 골만 먹으면 TV를 끌 요량이었다. 조 편성에서 지지리 운도 없고, 그나마 만만했던 스웨덴전에서 손흥민을 활용하지 못한 전술···. 도박사들은 한국이 독일을 2대0으로 누를 확률을 독일이 한국을 7대0으로 이길 확률보다 낮게 보았다.
아아 그런데 전반전에서 한국은 독일을 상대로 잘 싸우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2014년 우승국인 독일은 장기인 스피드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 1대0으로 끌려가자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는 골문을 비우고 나와 하프라인을 넘어 우리 진영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1대0으로 지나 2대0으로 지나 마찬가지일 터이겠지만 노이어가 조현우와 마주보는 상황까지 연출한 것은 자만심의 발로였다. 연봉 184억원 골키퍼와의 대결에서 연봉 1억원 골키퍼가 완벽하게 승리했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독일이 설마하니 한국에 질까 하는 오만에 빠졌던 것이 결정적 패인이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사력(死力)을 다하는데 변화무쌍한 그라운드에서 이판사판으로 덤벼드는 한국팀에 전차군단은 허둥댔다. 어쩌다 찬스를 잡아 골문으로 돌진해도 순발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조현우가 공을 낚아챘다. 독일은 26개의 슛을 날렸지만 무위로 끝났다.

독일전 승리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축구가 스웨덴전에서는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한마디로 주눅이 들어 기량을 맘껏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비 라인을 너무 끌어내리는 바람에 공격의 날이 무뎌져 유효 슈팅이 제로였다. “잘한다”고 칭찬을 해줘야 신바람이 날 텐데 여론은 연일 최악의 조편성에, 신태용 호로는 본선 진출이 어렵다는 전망을 쏟아냈다.

물론 한국팀에는 기본기가 안돼 있는 선수들도 있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는 무리한 태클을 하면 안 되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 “저게 국가대표냐”고 힐난이 나올 정도였다. 조현우가 인재발탁의 성공 사례라면 장현수는 선발 과정에서 걸러냈어야 한다. 축구만 그런 게 아니라 나랏일도 사람을 잘 고르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정부를 성공으로 이끄는 첫걸음이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독일이 월드컵 예선에서 80년만에 탈락한 치욕을 당한 것은 오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에서 정부 여당은 “자만심”이 최대의 적이라는 교훈을 배웠으면 좋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과 호남 충청을 휩쓸고 PK지역에서도 부산 경남 울산 광역단체장을 거머쥐었다. 자유한국당은 TK 지역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민심은 무섭게 바뀐다. 진보 집권 10년이 끝나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무렵의 분위기를 돌아보라. 10년만에 상황은 정 반대가 됐다. 정부 여당은 자만심을 가장 경계하면서 경제현실을 겸허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소득격차를 줄이는 정의로운 정책도 중요하지만 대졸 백수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최대의 정의일 것이다.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지만 경제월드컵은 매달 성적표가 나온다. 그래도 한국 기업들은 어려운 여건에서 선방하고 있다. 올해 1~5월 누적 수출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각종 규제가 기업을 어려움 속으로 밀어넣고, 국내 실업률은 다락에 이르렀지만 한국 기업들은 세계무대에서 펄펄 날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천당과 지옥을 넘나든 한국 축구의 교훈은 밖으로는 주눅들지 않고 안으로는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기업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각 분야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 지도자들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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