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사드요? 기술력으로 넘어야죠"

2018-10-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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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나비엔, 메이가이치 사업 '승승장구'

사드 광풍에도 기술력 앞세워 반등 성공

파부침주·입향수속 원칙, 인적쇄신 이뤄

베이징 순이구의 경동나비엔 신공장 내 자동화 생산라인. 중국인 근로자들이 콘덴싱 보일러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


환경오염 개선은 금융 리스크 억제, 빈곤 퇴치와 더불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창한 3대 핵심 국정 과제다.

중국 정부는 향후 3년간 '푸른 하늘 지키기 전쟁(蓝天保卫战)'에 국가 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책의 방향이 큰 전환을 이루면 새로운 사업 기회도 덩달아 생기게 마련이다.

중국은 지난해 말 베이징 등 화북 지역의 난방 연료를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바꾸는 '메이가이치(煤改氣)' 사업 추진을 발표했다.

80%를 웃도는 석탄 연료 비중을 오는 2021년까지 30% 수준으로 낮추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300만 가구 이상에 가스 보일러를 새로 공급키로 했다.

1년 만에 중국 보일러 시장 규모가 220만대에서 550만대로 커졌다. 중국 토종 보일러 기업은 물론 외국계 기업까지 치열한 수주전을 벌였다.

지난해 4월 베이징 퉁저우구가 첫 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다. 국내 대표 보일러 기업인 경동나비엔 중국법인도 입찰에 참가했지만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한·중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라 한국 기업에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행태가 횡행했던 탓이다.

한 달 뒤 반전이 일어났다. 경동나비엔은 메이가이치 사업자로 당당히 선정돼 세계 최대 보일러 시장인 중국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룰 토대를 마련했다.

경동나비엔 중국법인장인 김용범 전무는 "사드 보복이 심했을 때라 내부적으로도 거의 포기했었다"며 "어떻게 사업자로 선정됐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실 미스터리랄 것도 없다. 퉁저우는 베이징 도심 과밀화 해소를 위해 부도심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이다. 2030년까지 상주인구 130만명의 친환경 신도시로 조성된다.

이 지역에는 에너지 효율이 높고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콘덴싱 보일러를 공급하기로 결정됐다.

중국 토종 업체 중에는 환경기준을 충족하는 콘덴싱 보일러 제작 역량을 갖춘 곳이 없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콘덴싱 보일러를 생산하는 경동나비엔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다.

경동나비엔은 퉁저우를 시작으로 톈진, 허베이성, 허난성, 산시성, 산둥성 등 메이가이치 사업이 추진되는 모든 지역에 사업자로 참여했다. 외국계 기업 중 유일한 사례다.

◆"위기 극복 첨병은 역시 기술력"

경동나비엔이 사드 여파의 무풍지대였던 것은 아니다. 사드 갈등이 본격화한 이후 경동나비엔 중국법인의 지방 대리점들은 간판에서 '한국' 표기를 지워야 했다. 대리점주들의 볼멘소리도 커졌다.

메이가이치 사업자 선정은 분위기를 일거에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 김용범 전무는 "메이가이치는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라 당초에는 외국계 기업이 배제될 상황이었다"며 "기술력 우위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전했다.

수많은 기업의 명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남들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원천 기술은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이 되곤 한다.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사드 갈등이 봉합됐다고는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롯데는 물론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도 악전고투 중이다.

간만에 전해 들은 낭보에 기분이 좋아져 지난 12일 베이징 순이구에 위치한 경동나비엔 신공장을 찾았다.

다음달 공식 준공을 앞둔 신공장 내 82m 길이의 자동화 생산라인은 이미 가동되고 있었다.

신공장은 4만8000㎡(1만4500평) 면적으로 연말까지 3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2020년까지 생산라인을 3개로 늘려 연산 50만대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경동나비엔 중국법인의 지난해 매출은 4억5000만 위안(약 738억원), 2020년에는 2000억원 매출 달성이 목표다.

김 전무는 "지난해 14만대의 보일러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기준 9위를 기록했다"며 "3년 뒤에는 보일러 40만대, 가스 온수기 10만대 등 전체 판매량을 50만대로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경쟁이 치열하지만 품질과 안전성을 앞세워 점유율을 높여 나갈 것"이라며 "2022년 3위권 진입에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업황도 우호적이다. 올해는 중국이 천연가스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장 규모가 400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지만 내년 하반기부터는 러시아산 가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 2020년에는 가스 보일러 시장이 600만대 이상으로 커질 전망이다.

경동나비엔 중국법인 총경리를 맡고 있는 김학수 상무는 "시베리아 가스관이 연결되면 가스 공급량이 20% 정도 늘어나게 된다"며 "중국 난방 수요에서 보일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기존 7%에서 50%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범 경동나비엔 중국법인장. [사진=이재호 기자 ]


◆"기업은 사람이 전부 아닌가"

경동나비엔은 한·중 수교 직후인 1993년 중국에 진출해 1995년부터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중국 전역에 대리점을 설치하고 영업망 관리에 나섰다.

20년 이상 관계를 유지해 온 각지의 대리점주들은 경동나비엔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영국과 이탈리아 등 유럽 보일러 강국을 대표해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을 압도하며 메이가이치 사업이 이뤄진 전 지역에서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김 전무는 "지역별로 20년 넘게 대리점을 운영해 온 점주들의 현지 관시(關係)가 상당하다"며 "반면 우리보다 중국 진출이 10년 늦었던 유럽 기업들은 여전히 외국계라는 인식이 강해 불리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경동나비엔도 메이가이치 사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반등 모멘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 전무가 중국법인장으로 부임한 2014년 당시 경동나비엔의 보일러 판매량은 2만대 전후였다. 대형 토종 브랜드나 글로벌 기업을 뛰어넘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인적 쇄신이 절실했다. 김 전무는 "2014년 말 본사에서 사업계획을 발표하며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를 강조한 뒤 중국법인에 복귀해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1년 만에 직원 90명 가운데 60명을 해고하는 한편 기존 급여의 2배를 주고 신규 인력을 유치했다.

김 전무는 "대졸 초임에도 못 미치는 3000위안의 월급을 받으며 놀고 먹는 직원이 수두룩했다"며 "회사라는 게 사람이 제일 중요한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고를 당한 직원들은 김 전무의 멱살을 잡고 침을 뱉기까지 했다. 차량으로 공장 입구를 막고 제품 출고를 저지하는 사건도 벌여졌다.

현재 경동나비엔 중국법인의 직원 수는 270명. 5명이었던 영업파트를 50명 규모로 키웠다. 신공장 증설이 완료되는 시점에는 전체 직원 수를 5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김 전무가 중국에 부임하며 강조한 또 다른 원칙은 입향수속(入鄕隨俗·그 지방에 가면 그 지방의 풍속을 따르는 것)이다.

그는 "처음 와보니 법인장이 영업까지 맡고 있었는데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며 영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라고 반문한 뒤 "중국 1위를 달리던 토종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를 영업 총괄로 영입했다"고 소개했다.

광둥성에 3번이나 날아가 설득하는 '삼고초려' 끝에 영입에 성공한 뒤 제시한 연봉은 100만 위안.

김 전무는 "본사 인사팀에서 펄쩍 뛰더라. 손연호 회장을 직접 설득해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새 영업 총괄이 오자마자 매출이 2배 증가하고 대리점도 350개로 5배 가까이 늘었다"며 "중국식 영업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한 게 최대 성과"라고 부연했다.

현재는 퇴사한 상태다. 김 전무는 "1년 반 가량 근무했는데 중국의 리베이트 관행과 무리한 발주 등과 관련해 의견 충돌을 빚다가 결국 나갔다"며 "원래 근무하던 회사로 복귀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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