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 개혁.개방 40년 ④] '5最'의 도시 선전, 혁신은 현재 진행형

2018-10-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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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70% 석권한 '최초', 글로벌 1위 오른 '최고'

IT 퍼스트로 꿈꾸는 '최대', 판도 뒤흔드는 '최신'

"창업 열기 식을라" 원스톱 생태계 최선의 지원

개혁·개방 40주년을 기념해 선전 중심가 인민광장에서 진행된 조명쇼(위 사진)와 개혁·개방 성과 전시장에 설치된 덩샤오핑 초상화. [사진=이재호 기자 ]


지난 17일 선전 바오안 공항에 도착해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화웨이의 대형 체험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선전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체험관은 스마트폰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만지작거리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공항을 나서면 청량감이 느껴지는 파란색 전기차 택시가 도로를 메우고 있다. 11월 말까지 시내 2만여대 택시가 모두 전기차로 교체될 예정인데, 선전에 본사를 둔 비야디(BYD)가 전량을 공급한다.

택시에 오르니 뒷좌석에 앉은 승객까지 모두 안전벨트를 매야 한단다. 한국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지난해 7월 도입된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의무제는 시행 1년 만에 완전히 정착됐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도시답게 새로운 제도와 정책에 대한 적응력이 높았다.

3박 4일간 선전 곳곳을 둘러봤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의 심장으로 지목한 뒤 40년 동안 수많은 최초·최고·최대·최신의 사례를 만들어낸 선전의 변화와 혁신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DJI 관계자가 이미지 센서를 활용해 손으로 드론을 조종하는 모습(왼쪽 사진)과 선전 시내의 전기차 택시 충전소. [사진=이재호 기자 ]


◆'패스트 팔로어' 넘어 '퍼스트 무버'로

글로벌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한 DJI의 연구개발(R&D) 센터와 제품 전시장은 녹음이 우거져 대학 캠퍼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창업 단지 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DJI는 세계 최초로 일체형 드론을 선보인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180억 위안(약 2조9400억원)으로 추산된다.

알리바바와 샤오미 등 중국의 대표적 기업들은 아마존과 애플을 모방하고 뒤쫓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내세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DJI는 중국 기업으로는 드물게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됐다.

2006년 20명에 불과하던 직원 수는 1만2000명으로 불어났다. 17개국에 진출한 DJI는 글로벌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다.

선전에서 DJI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근무하는 한국인 석지현씨도 그중 한 명이다. 석씨는 "전체 직원 가운데 25% 정도가 R&D 인력"이라며 "완벽한 제품을 향한 집념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2년 첫 드론 제품을 출시하고 이듬해인 2013년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에 사용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며 "진주 양식업자나 양을 키우는 목축업자까지 주문할 정도로 드론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고 소개했다.

DJI는 드론에 탑재되는 카메라와 짐벌(균형 유지 장치)을 직접 개발한 뒤 이를 활용한 제품을 별도로 출시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홍콩과학기술대 기숙사에서 창업한 37세의 왕타오(汪滔) 회장은 여전히 엔지니어들과 함께 제품 개발에 몰두한다.

석씨는 "사내에서는 회장 대신 (왕타오의 영어 이름인) 프랭크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며 "평균 연령 20대의 젊은 기업답게 불필요한 격식은 없애고 창의성 발휘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준공한 텐센트 신사옥 내 직원 전용 체육관(왼쪽 사진)과 안면 인식 기반의 출입 통제 시스템. [사진=이재호 기자 ]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도 속출

루이성커지(瑞聲科技)는 선전의 수많은 휴대폰 부품업체 중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한 기업이다.

1993년 설립된 루이성은 전기신호를 음향신호로 바꾸는 변환기를 만들어 모토로라와 노키아 등에 납품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도약의 계기가 됐다. 선전 토박이인 화웨이와 ZTE, 오포, 비보 등의 IT 기업들이 줄줄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루이성도 특수를 누렸다. 스피커와 리시버 등 음향 부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현재 루이성의 시장 점유율은 35%로 세계 1위다. 삼성전자와 애플도 고객사 명단에 포함됐다.

2005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루이성 주가는 지난 10년간 27배 올랐다. 지난해 매출은 211억 위안(약 3조4500억원), 순이익은 53억 위안(약 8661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0% 이상 급증했다.

남편과 함께 창업한 우춘위안(吳春媛) 회장은 자산 규모 310억 위안의 중국 7위 여성 부호가 됐다. 창업 열기가 뜨거운 선전에서 널리 회자되는 성공 사례다.

루이성은 스마트폰 카메라용 광학 렌즈, 촉각 인지 기술인 햅틱(Haptic) 등의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원젠웨이(文建威) 루이성 홍보담당 임원은 "업계 표준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며 "창업 30주년이 되는 2023년에는 스마트폰의 두뇌와 외장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개혁·개방 40년, 스마트·IT 새 키워드

지난 9월 28일부터 연말까지 매일 저녁 선전 중심가의 인민광장에서 개혁·개방 40주년을 기념하는 조명쇼가 펼쳐진다.

선전시 정부가 300억원 넘게 들여 준비한 조명쇼는 43개 초고층 건물을 화폭 삼아 중국의 발전상을 소개한다.

마천루가 즐비한 선전의 화려한 스카이 라인은 2016년 118층 핑안(平安)국제금융센터가 준공되면서 완성됐다.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등을 보유한 중국 최대 민영 금융그룹인 핑안그룹의 본사다.

당초 660m 높이로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수 있었지만 비행기 항로 등의 문제로 첨탑이 제거되면서 600m로 수정돼 상하이타워(634m)를 넘는 데 실패했다.

1988년 설립된 핑안그룹은 개혁·개방 이후 급증한 금융 수요에 기대 급격하게 몸집을 불렸다. 마밍저(馬明哲) 핑안그룹 회장은 "우리는 개혁·개방이 가져온 기회를 잡은 수혜자"라며 "늘 국가와 고객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핑안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9745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25.8% 증가했다. 특히 수익 구조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된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와 헬스 분야에서 거둔 수익이 146억 위안으로 136.3% 급증한 것이다. 핑안그룹이 보유한 IT 기술 인력은 2만5000명으로 업계 최대 규모다.

후웨이(胡瑋) 핑안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개혁·개방 이후 전통적인 금융 사업으로 회사를 키웠다면, 향후 10년은 금융과 IT가 결합된 생태계 조성으로 성장동력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금융 분야에서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게 알리바바 등 기존 IT 기업과 다른 점"이라며 "도시 전체를 관할하는 금융시스템을 제공하는 스마트 시티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전 스카이 라인의 또 다른 축은 지난해 11월 문을 연 텐센트의 신사옥이다. 50층과 39층 높이의 2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텐센트 관계자는 "전체 3만8757명의 텐센트 직원 중 7000명이 이곳에서 근무한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안내 로봇, 버튼 없는 스마트 엘리베이터 등 첨단 기술이 총동원됐다.

22~24층에 조성된 휴식 공간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2개층을 헐어 만든 농구 코트와 280m 길이의 조깅 트랙, 실내 암벽 등반 시설, 농구장·탁구장은 점심 시간을 활용해 운동하러 온 직원들로 가득했다.

텐센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위챗 사용자는 10억5800만명에 달한다. IT 공룡을 이끄는 평균 연령 31세의 젊은 인재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
 

중국 핀테크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페이다이의 쩡쉬후이 회장(왼쪽 사진)과 직원들. [사진=이재호 기자 ]


◆변화, 도전··· 혁신기술 실험장

선전 인근의 광저우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는 황(黃)모씨가 지난 1년간 이용한 모바일 대출 건수는 180건. 이틀에 한 번 꼴이다.

황씨는 신용불량자가 아니다. 급전이 필요할 때 빌렸다가 의류 판매 대금이 들어오면 갚는 식으로 자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용하는 대출 플랫폼은 선전을 넘어 중국 전체가 주목하는 페이다이(飛貸). 페이다이는 대출 업무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100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대출 취급액은 300억 위안(약 4조8825억원).

쩡쉬후이(曾旭暉) 페이다이 창업자 겸 회장은 "우리는 대출 업체가 아니라 핀테크 기업"이라고 단언했다.

페이다이 직원 400명 중 IT 엔지니어는 170명, 이 가운데 70명이 빅데이터 분석 인력이다. 대출이 이뤄지는 과정을 동영상을 통해 지켜봤다.

모바일 앱을 열면 안면 인식 기술로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업계 최초 사례다. 신분증이나 사업자 증명서를 스캔하면 빅데이터 기반의 리스크 심사 과정을 거쳐 대출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대면 심사도, 언더라이팅(서류 기반 심사)도 없다. 리스크 관리를 명분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온 중국 은행들이 긴장감을 느낄 만한 사업 모델이다.

쩡 회장은 "대출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인터넷과 빅데이터 기반의 심사 기술을 기존 금융권에 이식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며 "동남아시아 등으로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창업 신청자가 선전시 난산구 혁신광장 내 행정서비스센터에서 스타트업 창업을 신청하는 모습. [사진=이재호 기자 ]


◆아침에 디자인, 점심 때 시제품

선전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이상적인 창업 환경을 최고의 공신으로 꼽는다.

쩡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20년 넘게 선전에서 창업을 준비했다"며 "넓은 시야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고 사업적 영감을 제공하는 참신한 환경을 갖춘 게 장점"이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DJI 관계자는 "아침에 디자인을 보내면 점심 때쯤 프로토 타입의 시제품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선전"이라며 "설계·디자인·부품 조달·조립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산업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창업 붐이 꺼지지 않도록 최선의 지원을 하고 있다.

선전의 창업 요람인 난산구 혁신광장 내 행정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난산구는 선전의 360개 상장사 중 150개사가 몰려 있는 곳이다. 화웨이 등 세계 500대 기업 중 9곳이 난산구에 입주해 있다.

센터 방문객은 하루 700~800명, 창업 신청 건수는 100건에 달한다.

센터 관계자는 "창업의 핵심은 인재"라며 "인재 인증 제도를 통해 석사 학위자에게 2만5000위안, 박사 학위자에게 3만5000위안을 아무 조건 없이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3만명이 지원을 받았는데 10%가량이 해외 인재"라고 덧붙였다.

3만㎡ 부지, 18개동의 혁신광장에 입주한 300~400개 스타트업은 임대료 30% 인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준규 코트라 선전무역관장은 "홍콩의 배후 생산기지 역할에 머물던 선전이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홍콩을 넘어선 것은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라며 "성장통을 겪는 기업들도 있지만 양질의 산업 생태계가 유지되는 한 선전의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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