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출신 中 민영기업가의 고백 "사생아 취급 힘들었다"

2018-12-06 05:10
  • 글자크기 설정

리싱하오 즈가오 회장, 中 5대 에어컨 브랜드

국유기업 우대, 민영기업 차별에 어려움 토로

100여개사 창업, "개혁개방으로 잠재력 발휘"

리싱하오 즈가오그룹 회장. [사진=이재호 기자 ]

40년 전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추진을 선언하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절대적인 평등주의에 젖어 있던 수많은 농민들이 농기구를 집어던지고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일부는 기업가로 변신해 엄청난 치부(致富)를 하기도 했다. 리싱하오(李興浩) 즈가오(志高)그룹 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즈가오는 중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에어컨 브랜드다.

지난해 매출액 107억 위안(약 1조7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4% 성장했다. 연간 생산량은 1000만대를 웃돈다.

세계 20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 중이며 태국과 베트남, 나이지리아 등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다.

2009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즈가오는 리 회장이 대주주인 민영기업이다.

지난달 26일 광둥성 포산시의 즈가오 본사에서 만난 그에게 창업 후 가장 어려웠던 점이 뭐였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리 회장은 "가장 큰 곤란은 사생아(私生子)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 외에는 기업을 경영하며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에도 사유재산 인정에 소극적이었다.

'중국식 시장경제'라는 모호한 체제 속에서 국유기업이 친자식으로 대접받은 반면 개인이 주체인 민영기업은 사생아로 불린 배경이다.

리 회장은 논란을 의식한 듯 "물론 민영기업을 사생아로 보는 건 과거의 관념"이라며 "지금은 공산당이 민영기업의 최대 지지자"라고 선을 그었다.

현실은 다르다.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시점에도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 전진 민영기업 후퇴)가 공공연하게 언급될 정도로 차별은 여전하다.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과도한 기업부채 문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유기업에 국한된 얘기다.

금융권 대출의 75% 이상이 국유기업에 몰려있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민영기업은 지하 금융에서 자금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경제의 또 다른 리스크로 꼽히는 그림자 금융의 시작이다.

리 회장은 공산당원이다. 회사가 성장하자 광둥성 우수 당원으로 선정된 데 이어 전국인민대표대회 광둥성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민영기업을 이끌며 당국의 차별을 피하고 최소한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그에게 큰 기회로 다가왔던 것은 사실이다.

리 회장은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벼농사를 짓던 내가 3만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기업가로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강조했다.

포산시 난하이구 출신인 리 회장은 지난 1982년 28세 때 고향 마을 인근의 작은 부두에서 아이스바를 팔며 첫 돈벌이를 시작했다.

30세에 가내 수공업으로 장갑을 만들어 팔았고, 수년 뒤 의류 부착 상표를 생산하는 첫 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플라스틱 제조, 금속 가공, 생수 제조 등 수많은 사업을 벌이며 돈을 모았다. 리 회장은 "지금까지 차린 100여개 회사 중 한두 개를 빼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며 "적자를 낸 회사는 없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1990년대 들어 에어컨 수리 사업을 시작한 그는 대만 기업가와 손잡고 1994년 즈가오를 창업했다. 1995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미쓰비시와 합작 제휴를 맺은 게 도약의 토대가 됐다.

리 회장은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민영기업은 우리 사람"이라며 국진민퇴 논란 해소에 나선 것을 언급하며 안도감을 표시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민영기업 좌담회에 참석해 △세금 부담 경감 △융자난 해소 △공평한 경쟁 보장 △기업 서비스 개선 △재계와의 소통 강화 △기업가 재산 보호 등을 약속했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민영경제의 발전을 지지하고 보호하겠다"는 시 주석의 공언에 리 회장을 비롯한 수백만 명의 민영기업가㎥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