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햇 "한국 은행들 디지털 전환 느려... 뒤처지면 글로벌 경쟁력 상실"

2020-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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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빈드 스와미 레드햇 아태 금융 서비스 부문 이사 인터뷰

국내 은행에 경직된 통합 시스템 대신 유연한 프라이빗 클라우드 기반 오픈뱅킹 필요성 강조

리눅스 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로 꼽힐 정도로 점유율이 높은 리눅스 개발사 레드햇이 한국 은행들이 '오픈뱅킹'과 같은 디지털 전환을 빠르게 완수해야 시장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을 것이란 진단을 내놨다. 오픈뱅킹이란 은행의 기술과 데이터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은행이 미처 생각지 못한 혁신 서비스가 등장할 토대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금융 플랫폼 업체로 거듭나는 게 목표다. 레드햇은 오픈뱅킹을 구현하기 위해 은행들이 경직되어 있는 기존 통합 시스템(메인프레임·유닉스)에서 벗어나 기술과 서비스를 외부에 공개하기 편하게 유연한 프라이빗 클라우드(리눅스·컨테이너) 환경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아빈드 스와미 레드햇 아태 금융 서비스 부문 이사.[사진=레드햇 제공]


9일 아빈드 스와미 레드햇 아태 금융 서비스 부문 이사는 기자를 만나 "은행을 포함한 한국 금융 업계는 혁신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다루는 일인 만큼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며 "최근 한국 정부가 마이 데이터 사업·데이터 3법 개정과 같은 규제 해소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한국 은행들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한층 빨라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스와미 이사는 은행 디지털 전환의 모범사례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미국의 메가뱅크 대신 아태 지역의 DBS(싱가포르개발은행)를 꼽았다. DBS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틈만나면 KB국민은행 디지털 전환의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은행 디지털 전환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DBS는 지난 2014년 디지털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레드햇과 함께 은행 인프라와 기술을 리눅스와 오픈소스를 활용하는 클라우드 환경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4년 후인 2018년에는 전체 시스템의 80%를 프라이빗 클라우드 환경으로 전환했고 60개가 넘는 앱과 서비스를 클라우드 환경에서 실행했다. 이어 2019년 더 이상 신규 기능을 추가할 필요가 없는 레거시(구형) 인프라와 앱을 제외한 모든 인프라와 앱에 클라우드를 적용해 오픈뱅킹 전환을 마무리했다. 일부 대외 서비스에만 제한적으로 클라우드를 도입하고 주요 시스템에는 여전히 통합 시스템을 이용 중인 한국 은행들과 대조적인 행보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오픈뱅킹의 가장 큰 장점으로 서비스 기획부터 출시까지 기간을 단축하는 민첩성(agility)을 꼽았다. 마이클 아라네타 IDC 금융 인사이트 그룹 부사장은 "메인 프레임 등 통합 시스템에 갇혀 있는 것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전 세계 메가뱅크가 통합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통합 시스템이 금융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최상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합 시스템은 민첩성이 필요한 디지털 시대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시스템을 계정, 채널, 리스크, 상품 등 기능 별로 분리하고 개별 모듈로 나눠야 접근이 쉬워진다. 접근이 쉬워야 민첩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한국 은행들도 오픈뱅킹의 장점을 알고 있고, 이를 도입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용해온 시스템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와미 이사는 레드햇이 이러한 은행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레드햇은 개별 서비스 축소(다운 사이징), 데이터 민감성 확인, 규제 준수 등 은행이 시스템 전환을 추진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랩을 구축했다"며 "한국 금융업계를 위해 지난해 4월 한국 오픈 이노베이션 랩도 개시했다"고 전했다.

스와미 이사는 세 가지 능력을 갖춰야 은행의 오픈뱅킹 전환이 완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째로 외부에 기술과 서비스를 공개하기 위해 오픈 API를 갖춰야 한다. 실제로 DBS뿐만 아니라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오픈뱅킹 전환이 완료되었다고 평가받는 은행들은 자체 포털을 통해 오픈 API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로 기업과 개발자들이 은행의 기술과 서비스를 쉽게 접근·활용할 수 있도록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 개발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에 나선 많은 은행들이 개발자들을 대량으로 채용해 이 단계를 수행 중이다. 셋째로 금융 데이터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가용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와미 이사는 한국 은행들의 오픈뱅킹 구축 사업에 레드햇의 오픈소스 기술 역량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레드햇은 전 세계 기업용 리눅스(서버 포함) 시장에서 78%의 비중을 가진 시장 선도적 사업자로, 클라우드 운영체제인 '레드햇엔터프라이즈리눅스(RHEL)',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클라우드 스택)을 위한 '오픈스택', 컨테이너 관리를 위한 '오픈시프트', 클라우드 운영 자동화를 위한 '앤서블', 데이터베이스 통합을 위한 '제이보스' 등 은행이 프라이빗 클라우드 환경을 구축할 때 필요한 기술을 통합 제공하는 유일한 회사다"며 "IBM,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 등 타 클라우드 업체와 협력해 한국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파트너로서 입지를 공고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레드햇이 한국 은행 인프라·기술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것임을 밝힘에 따라 시장의 판도가 IBM·오라클에서 레드햇으로 바뀔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레드햇은 메인프레임과 유닉스 서버를 판매하는 IBM의 자회사로 리눅스와 오픈소스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IBM은 기업 인프라 시장 흐름이 메인프레임·유닉스에서 리눅스·오픈소스로 바뀜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레드햇을 약 39조원을 들여 인수했다. 최근에는 제임스 화이트허스트 레드햇 최고경영자가 IBM 그룹의 회장으로 임명되는 등 피인수된 자회사에서 벗어나 IBM 그룹 자체가 레드햇과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한국 금융 업계에서도 클라우드 전환 파트너로서 레드햇을 선호하고 있다는 평가다. 많은 한국 은행들이 외부용 서비스에 클라우드를 도입할 때 운영체제로 RHEL을 이용할 것을 꼭 찝어 지목했다는 후문이다. 보안 지원과 프라이빗 클라우드 전환시 호환성을 감안한 결정이다. 이에 네이버 등 국내 클라우드 업체들도 자사 상품에 기존 우분투, 센트OS뿐만 아니라 RHEL을 즉시 추가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별개의 업체로서 영업도 따로하고 있지만, IBM과 레드햇은 결국 한 회사"라며 "디지털 전환과 오픈뱅킹이라는 큰 흐름에 맞춰 IBM 대신 레드햇이 한국 금융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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