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끝나지 않은 아프간 내전…판지시르의 어린 사자는 서방 지원을 원한다

2021-08-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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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탈레반 전투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판지시르에 합류해 함께 싸워달라"

정통성과 민중 지지 갖춘 마수드 주니어...국제 사회에도 도움 요청 "과거처럼 도와달라"

탈레반, 온건한 자세 취하고 있지만…마수드 주니어 "탈레반, 과거보다 더 극단적으로 변모"

무장조직 탈레반에 노획당한 아프간 정부군 장비. [사진=연합뉴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수도 카불이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지난 2001년 미국 침공으로 정권을 잃은 지 20년 만에 탈레반이 재집권에 성공한 셈이다. 탈레반은 대통령 도피로 빈자리만 덩그러니 남겨진 대통령궁까지 진입해 사실상 전쟁 승리를 선언했다. 9·11테러로 촉발된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 전쟁이 결국 탈레반 승리로 마침표를 찍는 모양새다.

하지만 반(反) 탈레반 세력이 북부 판지시르 지역을 중심으로 투쟁을 예고하면서 내전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언제든지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간 정치인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는 16일(현지시간) 아프간 국민과 무자헤딘(무장 게릴라 조직)에게 탈레반과 맞서 싸워달라고 촉구했다. 마수드 주니어는 반 탈레반 세력인 '북부 동맹'을 이끌어 온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아들로, 마수드 장군은 '판지시르의 사자'이자 아프간 민족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9·11 테러 이틀 전 알카에다 폭탄테러로 세상을 떠났다.
마수드 주니어는 최근 한 프랑스 언론에 보낸 성명에서 "폭정(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승리했다. 끔찍한 복수가 순교한 우리 땅에 닥칠 것이다. 카불은 신음하고 있고 우리 조국은 벼랑 끝에 서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고 운을 뗐다.
 

아프간 탈출 주민 가득 태운 카타르행 미군 수송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어 "아버지인 마수드 장군은 아프간 자유를 위해 싸우라는 유산을 내게 남겼고 이제 그 싸움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나는 동료와 피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에 대항해 계속 투쟁하겠다는 뜻이다.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정부는 군부대와 치안 병력, 민간봉기 군을 최대한 지원해 탈레반과 싸움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며 마수드 주니어와 뜻을 같이했다.

마수드 주니어는 프랑스 전 대통령인 샤를 드 골의 말을 인용해 전투는 졌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마수드 주니어는 "카불이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아프간은 전투에서 패한 게 아니다. 판지시르에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동포들이 있다. 아프간의 마지막 자유 지역인 판지시르에 합류해 우리와 함께 싸워달라"고 했다. 판지시르는 마수드 장군의 고향으로,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된 이후 유일하게 탈레반에 맞서 저항하는 지역이다.
 

아프간 제3 도시 헤라트 장악 후 순찰하는 탈레반.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마수드 주니어는 성명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국제 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요구했다. 그는 "과거 소련과 탈레반에 맞선 투쟁에서 우리를 도운 유럽과 미국, 아랍 세계에 고한다. 과거처럼 다시 한번 우리를 도와달라. 현재 아프간은 1940년대 유럽 상황에 놓여 있다. 판지시르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위기에 빠졌으며 우리만 고립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 "판지시르에 모인 전사들과 노인, 젊은 무자헤딘이 무기를 다시 들었다. 직접적인 지원을 통해 우리와 함께해달라"고 전했다. 마수드 주니어가 성명을 발표한 이 날 탈레반은 '새로운 버전'의 탈레반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 공격 대비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사진=AFP·연합뉴스]

아프간이 중동 지역 최대 화약고가 된 배경에는 탈레반과 북부 동맹 간 민족 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탈레반은 타지크족으로 이뤄진 북부 동맹과 지난 1996년 말부터 2001년까지 5년간 민족 분쟁을 벌여왔다.

당시 탈레반은 아프간 전 영토의 90% 이상을 완전히 장악하며 세력을 떨쳤다. 하지만 탈레반은 2001년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미국 요구를 거절한 뒤 크게 휘청거렸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탈레반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탈레반은 연합군의 지속적인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한 달여 만에 무너졌다. 이후 아프간은 과도 정부를 거쳐 2004년 친서방 민주 정부를 수립했다.
 

아프간 칸다하르 전투현장에서 치솟는 연기. [사진=AP·연합뉴스]

탈레반은 2001년을 기점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했으나 지난 20년간 아프간 정부군에 맞서 내전을 이어왔다. 탈레반은 내전을 통해 무뎌진 칼날을 조금씩 갈아왔고, 올해 초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미국 임무 종료를 선언하자 다시 칼을 빼 들었다. 탈레반은 미군이 빠져나간 공백을 하나씩 장악해나갔고 결국 아프간을 20년 만에 손아귀에 넣게 됐다.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온건한 자세를 취하며 국민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과거 탈레반이 통치했던 5년 동안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샤리아) 적용을 경험했던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대서양협의회와 인터뷰 중인 마수드 주니어 [사진=AtlanticCouncil 유튜브 채널]

하지만 마수드 주니어는 탈레반이 온건 세력과는 거리가 먼 극단적인 조직으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마수드 주니어는 11일 대서양협의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IS)와 결속하면서 과거보다 더 극단적으로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또 "탈레반을 압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억제'다. 탈레반 지도자들이 군사력만으로는 아프간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으면 그들은 정치적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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